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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우경임]악성 임대인 절반이 ‘임대사업자 혜택’ 누린다니

입력 | 2024-07-17 23:21:00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안심 전세 포털’을 통해 전세 보증금을 상습적으로 돌려주지 않은 악성 임대인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지난달 기준으로 127명이다. 그런데 이 중 절반이 넘는 67명이 임대사업자 자격을 유지하며 취득세·재산세, 양도소득세 감면 같은 각종 세제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HUG가 악성 임대인의 전세 보증금을 대신 갚아주고, 정부는 세금까지 깎아주고 있으니 기막힌 일이다.

▷임대사업자 등록이 취소되지 않은 악성 임대인이 세입자에게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HUG가 대신 반환한 금액이 무려 7124억 원에 이른다. 1인당 평균 106억 원씩이니 이들이 얻은 경제적 이득이 막대하다. 그 피해자만 3000명이 넘는다. 전세사기를 예방하겠다며 악성 임대인 명단을 공개하고도 국토교통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임대사업자 취소 같은 후속 조치를 제때 하지 않았다. 명단을 공개했으니 알아서 조심하라는 ‘일하는 척하는’ 행정이다.

▷지난 3년간 전세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아 임대사업자 자격이 취소된 건 7명에 불과하다. 악성 임대인 명단에 이름을 올리려면 떼어먹은 전세 보증금이 3년간 2건 이상, 2억 원 이상이고 채무 상환 의지가 없음을 확인해야 한다. 이처럼 악성 임대인 지정까지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데 임대사업자 자격을 취소시키려면 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임차보증금 반환 소송에서 세입자가 승소했거나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조정이 성립했는데도 반환하지 않는 경우 등으로 한정돼 있다. 세입자 스스로 전세사기를 당했음을 입증하는 절차를 거치고 나서야 임대사업자 등록을 취소시킬 수 있는 구조다. 엄격한 규정이 피해자를 보호하기보다 재량과 책임을 줄여 공무원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HUG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사고액은 2조6500억 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동기 대비 사고액이 43%나 폭증했다. 전세사기로 빌라 기피 현상이 뚜렷해진 데다 집값이 정점이던 때 계약한 빌라, 연립 등에서 역전세난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 금액을 올리고 가입 대상을 늘리는 등 섣부르게 전세 시장에 개입했던 대가를 이제사 호되게 치르고 있는 셈이다.

▷나랏돈이 아니라 내 돈을 떼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뻔히 갚지 않을 돈을 빌려주거나, 버젓이 임대 사업을 계속하도록 하면서 세제 혜택까지 줄 수 있을까. 이러니 호텔 가서 밥 먹고, 차를 몇 대씩 굴리는 악성 임대인을 마주치고 사기를 당한 세입자들이 가슴을 친다. 악성 임대인의 임대사업자 자격이 유지되는 동안 어떤 세입자가 추가로 피해를 당할지 모를 일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