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운영 응급의료 마지노선 순천향대 천안병원, 야간운영 중단 인력 없어 병원장이 응급실 근무도 “정부, 응급의 근무여건 개선책을”
17일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 한 응급환자가 누운 채 들어가고 있다. 중증·응급환자 치료를 최종 책임지는 권역응급의료센터 상당수는 최근 의료진 부족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7일 오전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센터 앞 간판에는 ‘의료진 인력 부족 때문에 중증·응급환자 위주로 운영되니 경증·비응급 환자는 다른 응급실을 이용해 달라’고 나와 있었다. 하지만 이 센터는 이미 중증·응급환자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태다. 병원 측은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을 통해 “응급실 인력 부재로 중증외상환자 수용은 불가하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병원 관계자는 "병원에서 받지 못하는 중증외상환자는 인근 권역외상센터로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 2월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병원 이탈 이후 격무에 시달리던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속속 의료 현장을 떠나며 중증·응급환자에게 ‘최후의 보루’인 권역응급의료센터 상당수가 제 역할을 못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순천향대 천안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이날부터 야간 운영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는데 의료계에선 순천향대를 포함해 다음 달까지 10곳 정도가 운영을 중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비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에선 지난달 말 응급의학과 전문의 7명 중 1명이 떠났고, 최근 1명이 추가로 떠나 다음 달부터 5명만 남게 된다. 의료 공백 사태가 5개월째 이어지는 동안 당직을 거듭하면서 피로가 누적된 탓이다. 이 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근무 일정이 너무 빡빡해 자는 시간 외에는 모두 일만 한다고 보면 된다”며 “연구는 꿈도 못 꾸고 서로 얼굴을 볼 때마다 ‘버티십쇼. 살아남읍시다’라고 인사를 한다”고 말했다.
순천향대 천안병원도 응급의학과 전문의 8명 중 4명이 사직하면서 24시간 동안 운영을 중단한 데 이어 17일부터 “오후 8시∼오전 8시 운영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응급실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된 것인데 다행히 17일에는 다른 교수들이 당직을 서겠다고 나서며 운영 중단 사태까지 발생하진 않았다.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현장을 떠나다 보니 다른 진료과목 전문의가 대신 투입되는 일은 다반사고 일부 병원에선 병원장까지 응급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한두 달 전부터 의료계 구인구직 사이트에 응급의학과 채용 공고가 넘치고 있다. 권역응급의료센터를 떠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상대적으로 근무 강도가 덜한 병원으로 몰린다”고 설명했다. 응급의학과의 경우 1년 단위 계약직이 많다 보니 병원으로서도 잡을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의료계에선 권역응급의료센터 상당수가 ‘한계상황’에 달한 만큼 앞으로 순천향대 천안병원처럼 한 달 내 일부 운영을 중단하는 사례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사이에선 ‘다음 달 말까지 10곳이 문을 닫을 것’이라며 구체적인 병원명까지 포함된 리스트가 돌고 있다. 특히 영남권과 충청권 권역응급의료센터들의 인력난이 심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은 “많은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다음 달까지 10곳 정도는 운영을 일부 중단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는 “권역응급의료센터 1곳당 평균 하루 150∼200명의 중증·응급 환자를 받는데 운영을 중단할 경우 해당 권역 환자들은 위급한 상황에서 다른 권역 병원을 찾아야 할 것”이라며 “정부가 응급의학과 전문의 근무 여건을 개선할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천안=이정훈 기자 jh8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