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규(55) 서울적십자병원 외과 과장이 17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주최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미디어아카데미에 나와 국내 필수의료의 현실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제공.
신동규(55) 서울적십자병원 외과 과장이 “장시간 좌상 복부에 있는 모든 장기를 다 드러내는 수술임에도 불구하고 양쪽 쌍꺼풀 수술비보다 더 싸다”며 필수 의료 수가 정상화의 필요성을 밝혔다.
신 과장은 17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주최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미디어아카데미에 나와 국내 필수 의료의 현실을 이같이 토로했다.
그는 의대 증원으로 내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응급의학과 등 필수 의료 인력이 늘어나긴 어렵다며 원가에도 못 미치는 고질적인 낮은 수가(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의료서비스의 대가)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4년 진행성 위암 환자를 대상으로 췌장, 비장, 심장, 횡행결장 등 좌상 복부에 있는 모든 장기를 다 드러내는 LUAE 수술을 시행했다”면서 “하루 종일 하는 수술임에도 불구하고 양쪽 쌍꺼풀 수술비(약 100만~200만 원)보다 더 싼 것이 현실이다”고 말했다.
이어 “애초 6개월 생존이 예상됐던 환자를 24.5개월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보람을 느꼈지만, 이런 (저수가) 현실을 알고 스스로의 생명이 단축되는 것을 알면서도 후배들이 외과를 선택하길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신 과장은 “장기를 하나 뗄 때마다 수가는 더 줄어들어 쌍꺼풀 수술만도 못하다”며 “LUAE 수술에 들어가는 수많은 장비와 인력을 고려하면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했다.
신 과장은 수가를 인상하면 의사 1인당 받는 돈이 늘어난다기보다는 추가 인력 고용 등 시스템 확충에 주로 투입돼 결국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공공병원에서 수가 문제가 해결되면 좀 더 인간답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 과장은 무엇보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이 고사 중인 필수 의료를 되살릴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의대 정원이 늘어나면 결국 빅5 병원만 살아남고 지역의료와 필수 의료는 붕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대 증원의 여파로 지방 필수과 전공의들은 텅 비고, 그나마 필수과를 지키고 있던 의사들마저 이탈이 가속화돼 지역의료가 붕괴되는 도미노 현상을 부를 것이라는 게 신 과장의 주장이다.
신 과장은 “정부에서 전공의들의 사직을 허락하면 메이저 병원에 있었던 필수과 전공의들은 ‘가을 턴’(하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수도권 병원의 비어 있는 인기과를 채울 것이고, 지방 병원의 메이저과 전공의들은 ‘빅5’ 병원의 비필수과 전문의로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직한 전공의는 당해 연도에 동일한 과에 재지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 과장은 “규모가 있는 병원들은 그나마 버틸 수 있겠지만 병원들이 제약업체, 의료기기업체 등에 대한 대금 지급을 늦추면서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공병원 필수 의료를 살리려면 세부·분과 전문의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내놨다. 재정 상태가 좋지 못한 공공병원에서는 대장암, 폐암, 간암, 유방암 등의 분과 전문의를 모두 채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 과장은 “공공병원에는 세부 분과별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에 한두 명의 외과 의사가 모든 수술을 다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한 사람이 모든 책임을 다 짊어지지 않으면 공공병원 필수 의료는 전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 과장은 국내에서 대표적인 공공병원으로 꼽히는 서울의료원과 적십자병원에서 20여 년을 외과 과장으로 일한 필수 의료의 산증인으로 꼽힌다.
세부 전공은 위암이지만 공공병원의 특성상 간담췌, 유방, 대장·항문 등의 수술은 물론 급성기 외상 환자 진료까지 도맡고 있다. 현재까지 집도한 수술만 총 4700건에 달한다. 그러면서도 지진피해를 겪은 인도네시아와 네팔은 물론 아프리카 10여 개국을 돌며 의료 봉사를 해왔다.
유명 대학병원에서 공공병원 급여의 2.5배를 주겠다며 이직 제안도 해왔지만, 그는 여전히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을 위한 공공병원 진료를 고집하고 있다.조유경 동아닷컴 기자 polaris2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