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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릇 16000원, ‘그 녀석’ 계절이 왔다… 슴슴하지 않은 평냉 이야기[동아리]

입력 | 2024-07-2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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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식이 그래요. ‘뭐지 이거?’ 하다가 다음날 갑자기 생각이 나. 그때부터는 빠져나올 수가 없는 거거든.”(드라마 ‘멜로가 체질’ 대사 중)

지난 4월 22일 서울의 대표적 평양냉면 전문점 중 하나인 ‘을지면옥’이 낙원동에서 영업을 재개했다. 2년 만에 문을 연 을지면옥 앞에는 이른 점심시간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윤우열 동아닷컴 기자 cloudancer@donga.com

지난 4월 22일 서울의 대표적 평양냉면 전문점 중 하나인 ‘을지면옥’이 2년 만에 낙원동에서 영업을 재개했다. “무더위가 오기 전 손님들에게 시원한 냉면을 대접하겠다”며 여름이 오기도 전에 문을 연 을지면옥 앞은 이른 점심시간부터 문전성시를 이뤘다.

을지면옥은 흔히 평양냉면의 양대 축이라고 불리는 ‘의정부파’를 대표하는 곳이다. 6·25전쟁 당시 월남한 김경필 씨(여) 부부가 1969년 경기 연천군에 문을 연 ‘의정부 평양냉면’에서 갈라져 나온 곳이기 때문이다.

자리를 옮기기 전 옛 을지면옥과 김경필 씨(여) 부부의 첫째 딸 홍순자 씨가 운영하는 필동면옥의 모습. 윤우열 동아닷컴 기자 cloudancer@donga.com


을지면옥은 1985년 김 씨 부부의 둘째 딸 홍정숙 씨가 세웠다. 첫째 딸 홍순자 씨와 셋째 딸 홍명숙 씨도 그 유명한 ‘필동면옥(중구 필동 소재)’과 ‘의정부 평양면옥(옛 ’본가 펑양면옥‘, 서초구 잠원동 소재)’을 각각 운영하면서 가업을 잇고 있다.

37년간 실향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한 을지면옥은 세운상가 재개발 계획에 따라 자리를 비워주게 됐다. 서울시가 을지면옥을 생활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한때 건물 철거가 보류됐지만, 결국 전면 철거로 방향이 바뀌면서 2022년 6월 마지막 영업을 마쳤다.

낙원동에서 영업을 재개한 을지면옥의 물냉면. ‘의정부파인 을지면옥 냉면은 육수에 고춧가루를 뿌려 낸다. 윤우열 동아닷컴 기자 cloudancer@donga.com

‘의정부파’ 평양냉면은 육수에 고춧가루를 뿌려 낸다. 또한 소금기가 느껴지는 간간하면서도 감칠맛이 올라오는 육수도 특징이다.

또 다른 양대 축 ‘장충동파’의 본산은 ‘장충동 평양면옥’이다. 평양에서 ‘대동면옥’을 운영하던 김면섭 씨의 며느리 변정숙 씨가 1985년 장충동에 냉면집 문을 열면서 시작했다. 슴슴하고 맑은 육수가 특징이다.

우래옥은 서울 평양냉면 집 중 가장 역사가 길다. 평양에서 식당 ‘명월관’을 운영하던 장원일 씨가 1946년 개업했다. 살코기만 사용한 깊은 육수 맛과 메밀 함량이 매우 많은 면이 특징이다. 윤우열 동아닷컴 기자 cloudancer@donga.com


이밖에도 평양에서 식당 ‘명월관’을 운영하던 장원일 씨가 1946년 개업하면서 서울 평양냉면 집 중 가장 역사가 긴 ‘우래옥’ 등이 계파를 형성하고 있다. 살코기만 사용한 깊은 육수 맛과 메밀 함량이 매우 많은 면이 특징이다.
“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 주류 음식된 후 치솟은 ‘평냉값’

2018년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로 오른 옥류관 평양냉면. 한국사진공동취재단

평양냉면을 찾는 발길을 꽤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주류 음식으로 여겨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남북간 평화무드가 짙었던 2018년 4월 말 정상회담 만찬 음식으로 ‘옥류관’ 평양냉면이 오르면서 본격적인 불이 지펴졌다.

실제로 당시 서울 평양냉면 식당 앞은 모두 길게 줄이 늘어섰다. 북한과 달리 남한에선 냉면이 여름음식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정상회담이 이뤄진 시점은 평양냉면에 관심을 가지기에도 적절한 계절이었다. 그해 여름까지 평양냉면의 인기가 이어지면서 수많은 ‘평양냉면러’가 탄생했다.

대표적인 서울 평양냉면 식당 중 한 곳인 을밀대 앞에는 ‘직접 눌러 뽑습니다’ ‘겨울에도 합니다’ 등 문구가 적혀있다. 윤우열 동아닷컴 기자 cloudancer@donga.com


문제는 평양냉면 가격이 지칠 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본래 평양냉면은 2018년 당시에도 7000원~1만4000원 사이 가격으로, 저렴한 음식이라고 하긴 어려웠다. 그래도 평균 1만 원 초반이면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평양냉면이 1만5000원~1만6000원이다. 다시 문을 연 을지면옥도 2018년에는 1만1000원에 평양냉면 한 그릇을 내놓았다. 문을 닫을 당시에는 1만3000원, 낙원동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는 1만5000원까지 올랐다. 6년새 36%나 오른 셈이다. 우래옥·봉피양은 1만 6000원에 팔리고 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한 그릇에 1만1000원이었던 을밀대 물냉면 가격은 현재 1만5000원으로, 6년새 36%가량 올랐다. 윤우열 동아닷컴 기자 cloudancer@donga.com


두 그릇에 3만 원이 넘는 가격대가 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선 심리적인 저항선이 형성되는 모양새다. 여름이면 생각나는 맛이라지만 가볍게 후루룩 먹는 면요리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인건비, 가스비, 전기료 등 모든 원자재 부담이 높아지면서 가격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점에 대해 공감하는 것과 별개로 소비에 영향을 주는 상황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마치 치킨값 3만 원 시대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과 유사하다.
평냉도 밀키트 대체될까… 전문점부터 기업들까지 뛰어든다

봉피양은 밀키트 제품을 선보이면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주문하기 위해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해야할 정도로 인기다.

가격 저항선을 느끼는 소비자가 늘면서, 이들을 잡기 위한 움직임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가장 높은 평양냉면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 봉피양은 밀키트 제품을 선보이면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주문하기 위해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해야할 정도로 인기다.

봉피양 평양냉면 밀키트는 맛에서도 경쟁력을 갖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냉면류 밀키트는 맛이 떨어진다는 인식과 달리 만족도가 높다는 후기가 대부분이다. 특히 얼갈이 절임까지 구성품에 포함시키면서 봉피양 평양냉면의 특징을 잘 살렸다. 1인분 기준 8000원정도 가격으로 봉피양 평양냉면의 맛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CJ제일제당이 선보이고 있는 냉면 밀키트 제품 라인업.


식음료기업들도 평양냉면 밀키트를 앞 다투어 출시하고 있다. 먼저 CJ제일제당은 ‘평양 물냉면’과 ‘동치미 물냉면’ 등 냉면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평양 물냉면’은 소고기 양지로 우린 담백한 육수에 ‘비비고 평양만두’까지 조합할 수 있어 평양냉면 애호가들의 취향을 저격하고 있다. 최근 맛과 패키지를 전면 리뉴얼한 ‘동치미 물냉면’도 평안도식 정통 레시피를 사용한 냉면이다.

풀무원은 지난달 ‘풀무원 평양냉면’을 전면 리뉴얼해 선보였다. 또한 ‘회냉면’과 ‘칡냉면’ 등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냉면 밀키트 카테고리를 강화하고 있다.

편의점 GS25는 평양냉면 육수를 음료로 구현한 ‘유어스 평양냉면육수’와 8인분 분량의 초대형 물냉면 ‘세숫대야물냉면’도 선보인다.


편의점 GS25는 평양냉면 육수를 음료로 구현한 PB제품인 ‘유어스 평양냉면육수’를 선보이고 있다. 서울 4대 평양냉면의 맛을 토대로 맛을 구현했고, 평양냉면 애호가들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쳐 가장 호불호 없이 대중적인 맛을 만들었다는 게 GS25 관계자의 설명이다.

평양냉면은 아니지만 GS25가 여름을 겨냥해 선보인 ‘세숫대야물냉면’도 눈길을 끈다. 8인분 용량의 초대형 물냉면으로 1.2kg의 냉면사리와 특제 냉면 육수, 냉면 소스, 건조 야채, 냉면 식초 등을 스테인리스 용기에 담아낸 제품이다.

윤우열 동아닷컴 기자 cloudanc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