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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재영]공무원 10명 중 3명 ‘조용한 사직’ 상태

입력 | 2024-07-18 23:21:00



공무원을 흔히 ‘공복’이라고 하지만 요즘 젊은 공무원들은 스스로를 ‘공노비’라고 자조한다. ‘복(僕)’이 종이나 머슴을 뜻하니 차이가 없는 것도 같지만 어감은 완전히 다르다. 공복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이지만 공노비에겐 보람과 사명감이 없다. 박봉에 업무는 과중하고 악성 민원에 시달리기 일쑤다. 경직적 조직문화에 자율성을 발휘하기도 쉽지 않다.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누칼협(누가 칼 들고 공무원 하라고 협박했나)’이라는 비아냥만 돌아온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중앙행정기관 공무원 1021명을 대상으로 가치관 조사를 한 결과를 연세대 행정학과 연구진이 추가로 분석해 보니 공무원 10명 중 3명은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사직은 하지 않으면서 최소한의 업무만 하겠다는 태도로 자리만 지키는 것이다. 응답자의 32.52%(332명)가 ‘조직이 원하더라도 추가적인 직무를 맡을 용의가 없다’고 했다. 일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을수록, 연령이 낮을수록 조용한 사직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근 공직사회는 박봉과 악성 민원, 낡은 조직문화 등으로 크게 위축된 상태다. 올해 9급 초임(1호봉) 공무원의 월평균 급여액은 222만2000원(세전)으로, 주휴수당을 포함한 월 최저임금보다 16만 원 많은 수준이다. 하루에만 평균 100건씩 생기는 악성 민원에 시달려 극단적 선택을 하는 공무원까지 나왔다. 선망의 대상이던 공무원의 인기는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올해 국가공무원 9급 공채 시험 경쟁률은 21.8 대 1로, 1992년 이후 32년 만에 가장 낮았다. 재직 기간이 5년이 안 된 공무원 퇴직자는 지난해 1만3566명으로 5년 만에 2.4배로 늘었다.

▷조직문화는 무기력을 학습시킨다. 한국행정연구원이 공직을 떠난 청년들에게 물어보니 국민의 삶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공직 문을 여는 순간 깨졌다고 했다. 갓 배치되자마자 인수인계도 없이 수억 원의 예산 편성을 떠넘기며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순환보직으로 1, 2년 뒤 다른 자리로 옮기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가 반복됐다. 능력 있으면 보상과 대우가 좋아지는 게 아니라 업무 부담만 늘어났다.

▷고위 공무원들도 다르지 않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극단을 오가는 정책 기조에 따라 눈치를 봐야 한다. 일을 열심히 하면 직권남용, 안 하다간 직무유기가 될 수 있다. 소신과 적극 행정은 접고 적당히 소극 행정을 하는 게 안전하다는 보신주의가 몸에 밴다. 직원들이 잠재적 퇴사 상태인 회사의 미래가 밝을 수 없다. 젊은 인재들은 공무원 되기를 꺼리고, 기존 공무원들은 자리만 지키려는 분위기에서 국가 행정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