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조사 결과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한 것으로 알려진 당일 당시 조태용 대통령국가안보실장과 주진우 법률비서관이 ‘02-800-7070’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날 당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이 번호로 발신된 전화를 받은 뒤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 이첩을 보류시켰다. 여기에 용산 핵심 참모들도 같은 번호로 전화한 누군가와 통화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지난해 7월 31일 윤 대통령이 참석한 안보실 회의가 열렸다. 여기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혐의자에 포함됐다는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윤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느냐’며 크게 질책했다는 것이 ‘VIP 격노설’의 뼈대이고 수사 외압 의혹의 출발점이다. 통화 시점은 세 사람 모두 회의가 시작된 이후였다. 발신자와 통화 내용이 확인되면 격노설의 진위를 가릴 중요한 단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 번호는 ‘대통령경호처’ 명의로 가입됐지만 실제 사용자가 누군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실 전화번호는 기밀 사안”이라고 했고, 어제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이 전 장관도 통화 상대방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대통령실 내선 번호 가운데 1개, 그것도 특정 시점의 통화 내용만 공개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것은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 사건은 1년 전 홍수 실종자 수색에 나선 해병이 급류에 휩쓸려 희생된 것에서 시작됐다. 경찰이 10개월간 수사했는데도 누구의 책임인지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는 새 수사 외압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졌고, 여야는 진상 규명보다는 특검 도입을 둘러싼 정치 공방에만 더 몰두하는 모습이다. 스무 살 해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언제까지나 의혹의 장막 뒤에 방치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