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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텔톤 골목길 너머 유럽이 살짝[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입력 | 2024-07-20 01:40:00


마카오 성바오로 성당이 보이는 파스텔톤 골목길 트라베사 다 파이샹. 포르투갈어로 파이샹은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뜻했으나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연애 골목(戀愛巷)’이 됐다.



16세기 중반 포르투갈인이 정착하기 시작해 1999년 중국에 반환되기 전까지 100년 넘게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마카오. 파스텔톤 바로크풍 건물이 곳곳에 있고, 동서양 맛이 섞인 마커니즈(macanese·마카오의) 요리가 입맛을 돋운다. 마카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가신 이후 공연장, 전시장,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갖춘 복합 리조트가 대거 확충되면서 이를 즐기는 가족여행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 성바오로 성당과 역사지구



마카오 면적(약 30km²)은 서울 송파구(약 34km²)보다 작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부터 있던 25개 광장과 건축물로 구성된 역사지구는 걷기만 해도 흥미로운 골목길 탐험이 펼쳐진다. 대표적 출발점은 성바오로 성당 유적지. 언덕 위에 바로크 양식의 석조 파사드(전면 부분)가 우뚝 솟은 모습은 유럽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파사드에는 기독교 구약성경 창세기와 신약성경 내용뿐 아니라 한자와 모란, 국화, 포르투갈 상선 문양도 새겨져 있다. 성당 옆에는 도교 사원(나차 사원)이 있어 동서양 종교가 혼재하는 마카오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성 김대건 신부가 걸어 올랐다는 성바오로 성당 유적지 계단. 

성바오로 성당 유적지엔 원래 예수회가 세운 동아시아 최초의 서양식 대학과 마테르 데이 성당이 있었다. 1562년 목조로 지었다가 화재가 나서 1637년 전면부만 석조로 재건했다. 그런데 1835년 화재로 또 소실돼 현재는 전면부와 지하실, 일부 벽면과 계단만 남아 있다.

마카오 카몽이스 공원의 성 김대건 신부 동상.

2022년 개봉한 영화 ‘탄생’에는 한국 최초 천주교 사제 성 김대건 신부가 마카오로 유학하는 장면이 나온다. 김대건 등 유학생 3명은 1837년 만주와 중국을 거쳐 약 7개월 만에 걸어서 마카오에 도착했다. 그러나 성바오로 성당은 2년 전 불타 버린 후였다. 그들은 인근의 성안토니오 성당 부설 임시 신학교에서 공부했다. ‘꽃의 성당’으로 불리는 성안토니오 성당 내부와 인근 카몽이스 공원에는 두루마기를 입은 김대건 신부 성상(聖像)이 세워져 있어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성바오로 성당 계단을 내려오면 마카오 명물 육포 거리가 이어진다. 길을 걷다 보면 가게마다 큼직하게 썬 육포를 나눠준다. 그러다가 마주친 예쁜 골목! 색색의 파스텔톤으로 칠한 골목 끝 담벼락 위로 성바오로 성당이 살짝 보인다. 포르투갈어로는 ‘트라베사 다 파이샹’이라고 하는데, 중국어로는 연애항(戀愛巷·연애 골목)으로 불린다. 길이 약 50m의 짧은 골목이지만 데이트와 드라마 촬영으로 유명해 알록달록한 우산을 쓰고 ‘인생 샷’을 찍는 관광객도 많다.

물결무늬 돌로 바닥을 장식한 세나두 광장.

역사지구는 세나두 광장까지 이어진다. 어묵 골목에서는 1889년 지은 중국의 부유한 사업가 루카우 저택도 구경할 수 있다. 청회색 벽돌집 내부는 스테인드글라스와 대나무가 심긴 정원 등 동서양이 어우러진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시의회가 있던 세나두 광장은 물결무늬 타일이 깔려 있다. 포르투갈 상선이 중국 비단과 도자기 같은 상품을 싣고 가기 위해 빈 배로 올 때 배의 무게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싣고 왔던 돌로 광장 바닥을 깔았다고 한다.

● 가족여행과 ‘호캉스’ 도시

마카오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안다즈, 런더너, 래플스, 그랜드 리스보아 팰리스, 카를라거펠트, 팔라초 베르사체 같은 새로운 호텔이 많이 문을 열었다. 또 기존 카지노 호텔도 미식, 쇼핑, 엔터테인먼트, 국제회의, 전시를 모두 즐길 수 있는 초대형 복합 리조트(IR)로 탈바꿈하고 있다. 실제 팬데믹 이전인 2020년에 132개이던 마카오 호텔은 올 2월에는 148개로 많아졌고 객실도 7000개가량 늘어났다.

올해 인천 영종도에 문을 연 모히건 인스파이어 리조트는 천장 발광다이오드(LED) 화면에 대형 고래가 헤엄치는 영상으로 화제를 모았다. 마카오 MGM코타이 호텔 로비에서도 매시간 돌고래 쇼가 펼쳐진다. 화려한 디지털 영상 대신 은박지로 된 돌고래 풍선에 프로펠러를 달고 사람이 조종하는 ‘돌고래 드론 쇼’다. 어린아이는 물론이고 나이 지긋한 사람까지도 동심으로 돌아간 듯 돌고래를 잡으러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웃음을 지었다. 로비에는 자수를 놓은 청나라 시대 카펫을 비롯한 300여 점의 아트 컬렉션이 있어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지난해 문을 연 런더너 호텔의 빅벤 조형물 야경.

마카오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버스 야경 투어. 2만5000원 정도면 2층버스 지붕 위 좌석에서 3차원(3D) 아이맥스 영화를 보는 듯한 압도적인 야경을 구경할 수 있다. 베니션 호텔과 파리지앵 호텔에는 실제 크기 2분의 1로 정교하게 세운 에펠탑과 개선문, 리알토 다리와 두칼레 궁전이 화려하게 빛난다. 그 맞은편에 지난해 5월 개장한 런더너 호텔에는 실제와 똑같은 높이(96m)로 재현된 빅벤을 비롯해 영국 국회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황금빛 조명을 발한다. 유럽 현지에서도 볼 수 없는 동시다발적 야경이다. 영화 ‘배트맨’의 고담시티를 모티브로 한 ‘스튜디오 시티’는 검은색과 붉은색 조명, 푸른색 서치라이트로 이색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윈팰리스 호텔의 퍼포먼스 레이크 분수 쇼와 케이블카. 

윈팰리스 호텔에서는 15분마다 한 번씩 분수 쇼 ‘퍼포먼스 레이크’가 펼쳐진다. 호텔 앞 호수를 가로지르는 ‘스카이캡 케이블카’(무료)에 탑승하면 공중에서 분수 쇼를 내려다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런더너 호텔에는 영국 대표적인 문화 상품 ‘해리포터 전시장’이 문을 열었다. 입구에서 나눠 주는 마법지팡이를 받고 호그와트 마법학교 기숙사에 등록한 뒤 각종 마법을 배우는 게임을 하는 몰입형 전시다. 해리포터 시리즈와 함께 자란 20, 30대 관람객들은 촛불이 떠다니는 대연회장 등에서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닐 정도로 좋아한다.

베니션 리조트에는 ‘팁랩 슈퍼 네이처’가 문을 열었는데, 디지털 조명으로 만든 꽃잎과 나비가 녹차 찻잔 위로 날아드는 다도 체험은 특별했다. 1954년부터 마카오 시내 도로에서 열리는 F3 자동차 경주와 오토바이 경주인 ‘마카오 그랑프리’ 역사를 한눈에 보여 주는 박물관에서는 역대 우승자들의 밀랍인형도 볼 수 있다.

갤럭시 리조트의 안다즈 호텔은 마카오가 국제회의, 포상 관광, 컨벤션, 전시를 뜻하는 마이스(MICE) 산업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보여 준다. 지난해 개장한 이 호텔에는 전시와 회의 시설을 갖춘 4만 m² 규모의 갤럭시 인터내셔널 컨벤션 센터(GICC)와 1만6000석 규모의 공연장 갤럭시 아레나가 있다. 갤럭시 아레나에선 지난해 5월 블랙핑크 아시아 투어 공연이 열렸고 올해 10월 26, 27일에는 (여자)아이들 공연이 펼쳐진다.

● 미식의 도시

마카오의 독특한 마커니즈 요리에는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와 인도, 넓게는 중국, 동남아의 다양한 식문화가 포함돼 있다. 마커니즈 전문 식당 ‘리토랄 레스토랑’에서는 ‘아프리카 치킨’이라는 이색 메뉴가 있다. 포르투갈식 닭구이에 모잠비크에서 나는 매운 피리피리 고추와 인도 코코넛 밀크 그리고 커리 향신료를 넣은 요리다. 대항해시대 포르투갈이 거쳐 간 나라의 향기가 모두 담긴 셈이다.

콜로아느 빌리지 원조 에그타르트 전문점 로드 스토 카페.

콜로아느 빌리지는 한적한 교외 분위기가 나는 어촌이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도둑들’을 촬영한 성프란시스코 사비에르 성당 앞 광장 노천식당을 비롯해 예쁜 카페와 음식점이 많다. 한국에 이런 곳이 있으면 당장 ‘콜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마카오의 유명한 간식 에그타르트를 맛볼 수 있는 원조 가게 ‘로드 스토 베이커리와 카페’가 있다.

● 마카오 가는 법=대한항공이 1일부터 인천∼마카오 노선(주 7회·매일 한 차례)을 취항했다. 비행시간은 약 3시간 40분. 그동안은 저비용항공사(LCC)만 운항했다. 마카오에서 버스를 타고 세계 최장(55km) 해상 교량인 강주아오 대교(홍콩∼중국 주하이∼마카오)를 건너면 40분 만에 홍콩에 도착해 관광한 뒤 홍콩국제공항에서 돌아올 수도 있다.



글·사진 마카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