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기술연구원-산업연합포럼 탄소중립 포럼 열고 협력 논의 반도체 산업 온실가스 줄이자 ‘그린수소’ 전환 전 공백 메우자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이 만드는 온실가스의 4분의 1은 국내 반도체 기업이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반도체 산업의 ‘환경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2050년 한국이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탄소 저감 기술 연구개발(R&D)에 그치지 않고 탄소 배출량이 많은 산업 현장에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 함께 개발돼야 한다. 국내 연구기관과 글로벌 기업들이 산업 현장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고 탄소중립을 실천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 개발에 시동을 걸었다.
반도체 공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그린반도체공정 기술이 대표적이다. 또 탄소중립 에너지로 여겨지는 ‘청록수소’를 만들어 친환경 ‘그린수소’까지 전환하기 전 공백을 메우는 전략도 있다.
이처럼 한국 맞춤형 산업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탄소중립 전략에 대한 아이디어와 실질적인 움직임이 12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대한민국 수소경제·탄소중립 대국민 포럼’에서 공개됐다.
이창엽 생기원 지속가능기술연구소장은 “제품을 만들 때 탄소가 얼마나 나오는지 계산해 관세처럼 부과하는 유럽의 탄소국경 조정제도(CBAM)가 시행되고 친환경 기업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며 “환경 이슈는 지금 당장 경제와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 ‘그린반도체공정’ 테스트베드 조성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이 유발하는 온실가스의 4분의 1은 국내 반도체 기업이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단체 그린피스 보고서에 따르면 후속 조치가 없을 경우 2030년 국내 반도체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4600만 t으로, 2021년 대비 2.4배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산업이 환경 리스크로 발목을 잡힐 수도 있는 상황이다.
포럼에 참석한 윤석호 삼성전자 인프라엔지니어링그룹장은 “반도체는 ‘클린룸’에서 만들어지는데 이곳의 온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천연가스가 연료로 많이 쓰인다”며 “공정 가스 처리 과정 등에서 나오는 폐열을 회수하는 등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기원은 앞서 기업 수요 조사에서 나온 의견을 반영해 현장 적용을 가속할 수 있는 플랫폼인 그린반도체 테스트베드를 조성한다. 성능 검증, 교육 서비스 등을 제공해 반도체 연구소나 대학 등이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생기원은 이미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한 성과도 보유하고 있다. 반도체 생산 공정에 사용되는 다양한 불소가스(F-gas)는 지구온난화 유발 정도가 이산화탄소의 수천∼수만 배에 달한다.
이은도 생기원 지속가능기술연구소 수석연구원팀은 액체금속을 사용해 불소가스를 99% 이상 감축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적은 에너지로도 불소가스와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등의 환경오염 물질도 함께 제거할 수 있다. 반도체 공정 가스 등을 공급하는 설비인 ‘서브팹’에 적용하면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 ‘청록수소’로 ‘그린수소’ 전환 공백 메꾼다
한국은 2050년 청정수소의 80%를 수입에 의존할 것으로 전망된다. 천연가스를 열분해해 생산하는 청록수소는 그린수소에 비해 탄소 배출량이 높지만 다른 수소 생산 방식과 비교하면 에너지 효율이 높고 가격 경쟁력도 있다는 분석이다.
청록수소는 국내에서 빠르게 청정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대안으로 거론된다. 특히 기존 천연가스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어 조기 상용화를 통해 수소경제 활성화를 앞당길 수 있다. 김휘동 생기원 지속가능기술연구소 선임연구원팀은 청록수소 생산 시스템을 개발하며 천연가스인 메탄(CH4)을 90% 효율로 수소와 고체 탄소로 전환하는 원천 기술을 확보했다.
포럼에서는 안전 기준이나 정책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윤석현 한국산업연합포럼 미래산업연구소장은 패널 토의에서 “수소경제 분야가 태동하는데 아직 기준이 미비하다”며 “안전 기준 등을 먼저 만들고 글로벌 표준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선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2021년 12월 기준 국내 수소 분야 매출 총액은 8조3000억 원 수준으로 한 산업 전체 매출이 한국마사회나 다음카카오 등 한 개 기업 수준”이라며 “실상은 걸음마 단계가 아닌가 한다”고 꼬집었다. 김 위원은 “민간의 자발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재투자하며 성장한다”며 “기업의 목소리를 반영해 공공 주도에서 시장 주도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상적인 장기 계획보다 현실적인 중·단기 계획을 세워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병구 동아사이언스 기자 2bottle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