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에서 독립전쟁 유공자 자녀에게 공무원직의 30%를 주는 ‘공직할당제’ 반대 시위가 격렬해지며 21일까지 최소 151명이 숨졌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방글라데시 대법원은 이날 최종판결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할당제에 제동을 걸었다
16일부터 본격화된 시위는 참가자들이 국영 방송사와 경찰서 등에 불을 지르고, 중앙은행과 총리실 홈페이지를 해킹하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경찰과 군 병력까지 동원해 장갑차로 시내를 순찰했고, 일부 지역에선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사했다.정부는 수도 다카 시내에 19일 밤부터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22일은 임시공휴일로 선포했다. 18일부터는 인터넷도 제한되며 국영TV 방송 등 주요 언론 매체도 운영을 멈췄다.
이번 시위는 대학생 등 청년층이 주도하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2022년 청년 실업률이 16.1%로 전체 실업률보다 약 3배 높다며 “값싼 의류 수출 산업에 의존해온 방글라데시 경제가 팬데믹 이후 휘청이면서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이 불평등에 분노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는 1971년 벌어졌던 독립전쟁의 유공자 자녀에게 공무원직의 30%를 할당하려다가 2018년 반발 여론에 부딪혀 폐지했다. 하지만 지난달 다카 고등법원이 폐지 무효를 결정하며 시위가 촉발됐다.
이번 시위는 2009년 집권 뒤 철권통치를 이어온 셰이크 하시나 총리가 직면한 가장 큰 정치적 도전이다. 하시나 총리는 시위대를 파키스탄과 싸웠던 독립전쟁 당시 적에게 협력했던 ‘라자카르’에 비유하며 “자유 투사 자손이 혜택을 봐야 하냐, 라자카르 자손이 혜택을 봐야 하냐”고 비난하기도 했다. 한 시위 참여자는 BBC방글라데시에 “우리도 유공자를 존경한다. 단지 공정성을 지적했을 뿐”이라며 “정부가 왜 우리를 적으로 만드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호소했다.
방글라데시 대법원은 이날 고등법원의 명령을 기각하고 공무원 신규채용 인원 중 유공자 가족 할당비율을 30%에서 5%로 축소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추후 필요시 정부가 비율을 조정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긴 만큼, 곧바로 상황이 정리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AFP는 “현 단계에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오직 현 정부 퇴진 뿐”이라는 한 시위 참가자의 말을 전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