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경기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이동식 확성기로 추정되는 트럭이 위장막을 덮고 대기하고 있다./뉴스1 ⓒ News1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심리전 수단으로 꼽힌다. 그런 만큼 이번 방송 전면 재개를 명분으로 북한이 전방 지역 국지적 무력 도발 등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군은 이에 대비해 최전방 K9 자주포 등 포병 전력의 화력 대기 태세를 격상시켰다. 남북이 휴전선 일대를 중심으로 팽팽하게 대치하면서 긴장 수위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오후 “여러 차례 경고한 바와 같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모든 전선에서 전면 시행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18일에 이어 사흘 만인 이날 오전 또 오물풍선을 살포하자 확성기 ‘풀가동’이란 채찍을 꺼내든 것. 군은 오후 1시부터 동·서부와 중부 최전방에 배치된 24개의 고정식 확성기를 모두 가동해 방송을 재개했다.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최대 10시간 이상 가동할 방침이다. 또 필요하면 차량을 활용한 이동식 확성기(16대)까지 투입할 계획이다.
“북한에 가장 위협적인 심리전 무기(대북 확성기)를 일회성이 아닌, 일상적·지속적 대북 억제·압박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미다.”
군이 이날 대북 확성기 방송에 전면 돌입한 배경에 대해 군 소식통은 이렇게 밝혔다. 오물풍선 테러를 중지하라고 거듭 경고했음에도 북한이 중단은커녕 시간대까지 바꿔가며 오히려 변칙적인 살포에 나서자 우리 역시 차원이 다른 수위와 강도로 대북 심리전을 구사하겠다는 것. 북한에선 최근 집중호우에도 비무장지대(DMZ) 전역에 지뢰를 대량으로 매설하다가 폭발 사고로 다수 사상자가 발생했다. 확성기 방송 재개 결정에는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북한군 심리를 동요시키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모든 전선서 새벽부터 하루 10시간 이상 방송
군은 그간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에 대응해 고정식 확성기 일부만 가동해 왔다. 지난달 4~7차 오물풍선 살포 땐 아예 대북 경고만 했다. 지난달 오물풍선 중 2개가 대통령실 코앞인 서울 용산구 용산어린이정원과 전쟁기념관에 떨어졌을 때도 확성기를 틀지 않았다. 당시 남북이 단기간에 강한 자극을 주고받아 군사적 긴장 수위가 급격히 높아지는 상황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우리 정부 내부에 있었고, 북한이 오물풍선 내용물에서 거름을 빼는 등 수위 조절을 한 듯한 모습도 정부가 확성기 방송을 일단 자제한 배경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대북 심리전 방송인 ‘자유의 소리’를 재송출하는 방식이다. 이날 방송에서 군은 최전방 지역에서 북한군이 강제 노역에 동원됐다가 지뢰 폭발로 다수 사상자들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또 “지옥 같은 노예 삶에서 탈출하라”는 등 북한 내 인권 유린을 규탄하는 내용도 담았다. 최근 이어진 북한 외교관 탈북 소식 등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밖에 북한 주민에게 외국문화 배격을 지시하면서 자신은 일본 만화 슬램덩크를 즐기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내로남불을 비판하는 내용 등도 방송됐다. 국내외 뉴스, 일기예보 등은 물론 ML세대가 다수인 북한군이 들을 법한 케이팝도 방송 내용에 포함됐다.
수십 대의 고출력 스피커를 쌓은 형태의 고정식 확성기의 가청 거리는 20~30km에 달한다. 군 당국자는 “휴전선 일대 북한군은 물론이고, 황해남도과 강원도 일대의 북한 주민들도 똑똑히 들을 수 있다”고 했다.
● 軍 “이동식 확성기 16대도 언제든 투입”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심리전 수단이다. 김정은 체제의 이중성과 실정(失政)으로 고통받는 북한 주민의 마음을 파고 들어 북한 체제를 내부로부터 이완, 균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휴전선을 넘어온 북한군 귀순자 중 다수가 대북 확성기 방송이 귀순 결심에 영향을 줬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어릴 적부터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몰래 시청해 온 지금의 북한군 병사 등 북한의 젊은 세대에게 대북 확성기 방송의 심리적 효과는 배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