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한동훈이 민주당에 쥐여준 패 [김지현의 정치언락]

입력 | 2024-07-22 14:00:00

국민의힘 한동훈 당 대표 후보가 17일 경기 고양 소노아레나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4차 전당대회 서울·인천·경기·강원 합동연설회에서 정견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굳이 (국회) 회기 중에 (이재명) 체포동의안을 보내려는 것은 부결되면 방탄이라고 민주당을 공격하고, 가결되면 민주당이 분열됐다는 정치적 타격을 주려는 그야말로 바둑에서 말하는 ‘꽃놀이패’를 만들려는 의도다.” (박광온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2023년 8월 23일 오전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에겐 이재명 대표의 범죄 혐의 수사가 패만 잘 뜨면 이길 수 있는 화투 게임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 같은 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 장관이 자주 발끈하시는데, 발끈할 때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정확히 이해한 다음에 하는 게 좋겠다. 꽃놀이패는 화투가 아니라 바둑의 정석에 나오는 것이다. 양자택일 중 뭘 선택해도 상대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바둑에서 ‘꽃놀이패 준다’고 말한다.” (이소영 당시 민주당 원내대변인, 2023년 8월 24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꽃놀이패는 원래 바둑에 나오는 용어지만 민주당 행태를 비유하기엔 바둑은 너무 고급스럽고, 화투패가 적당하다”(한 장관이 법무부 관계자들에게 같은 날 오후 이같이 언급했다는 MBN 보도)
지난해 여름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은 민주당 인사들과 ‘꽃놀이패’를 둘러싼 설전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박광온 당시 원내대표가 검찰의 이재명 수사를 ‘꽃놀이패’라고 비판하자, 한 장관이 ‘화투 게임’하느냐고 역공하면서죠. 국어사전에 따르면 꽃놀이패는 바둑에서 이기면 큰 이익을 얻고, 져도 부담이 없어 마치 꽃놀이하는 가벼운 패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화투를 이용한 고스톱 게임에서도 자주 쓰는 용어죠.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나경원(왼쪽부터), 원희룡, 한동훈, 윤상현 후보. 뉴스1

1년 만인 올해 여름에도 ‘꽃놀이패’란 용어가 정치권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번엔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가 된 한동훈 후보가 반대로 민주당에 꽃놀이패를 제대로 쥐여준 듯하네요. ‘어대한’(어차피 당 대표는 한동훈) 기류 속에 시작한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후보들 간 자멸에 가까운 내부 폭로와 공격으로 ‘폭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죠. 선을 넘어도 한참 넘어버린 탓에 전당대회 막이 내리고 나면 심리적 분당(分黨) 상태마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민주당은 이 과정에서 터져 나온 의혹들을 신나게 ‘줍줍’하며 “이제 다 같이 수사나 받으러 가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고요.

일단 ‘댓글팀’ 운영 의혹이 첫 시작이었습니다. 전당대회 초반을 뜨겁게 달궜던 김건희 여사와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간 텔레그램 메시지 ‘읽씹’ 논란 도중 처음 등장했죠. 김 여사는 메시지에 “요 며칠 제가 댓글팀을 활용하여 위원장님과 주변에 대한 비방을 시킨다는 얘기를 들었다. (중략) 결코 그런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있을 수 없다”라고 썼다 하죠. 만약 댓글팀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그럴 일 없을 것’이라고 할 게 아니라 ‘댓글팀이 대체 뭐냐, 그런 건 없다’고 부인하는 게 흐름상 더 자연스러웠을 듯합니다.

어쨌든 한 후보가 ‘읽씹’해 논란이 됐던 이 메시지가 ‘김건희 댓글팀’ 논란으로 확산되자 친윤(친윤석열)계인 장예찬 전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이 “한 후보도 법무부 장관을 할 때부터 여론관리를 해주고 우호적인 온라인 여론을 조성하는 팀이 별도로 있었다”고 주장하며 ‘한동훈 댓글팀’ 의혹을 추가로 꺼내 들었습니다.

민주당으로선 ‘김건희 받고, 한동훈도 추가’하는 반응입니다. 당장 “불법적 여론조성팀, 댓글팀 운영은 민주주의와 선거제도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반민주적, 반헌법적 범죄다. MB 시절 국정원과 기무사의 댓글공작 그리고 드루킹의 불법 댓글 조작 관련자들은 무거운 형벌을 받았다”(15일 이해식 수석대변인)고 엄포를 놓더니, 거의 매일같이 “불법 댓글팀 운영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는 최악의 국정농단, 국기문란, 중대 범죄행위다. 수사 기관은 즉시 불법 댓글팀 의혹 수사에 착수해야 하고, 수사 기관이 수사 의지가 없다면 특검으로라도 밝혀야 한다”(16일 박찬대 원내대표)라고 했습니다.

‘한동훈 때리기’에 조국혁신당이 빠질 리 없죠. 22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1호 당론 법안으로 ‘한동훈 특검법’을 냈던 조국 대표(20일 전당대회에서 무려 99.9% 찬성률로 당 대표를 연임하게 됐죠. 이것도 정녕 놀랍습니다)는 “이미 발의한 한동훈 특검법 안에 이번에 문제가 된 사설 댓글팀 운영 의혹도 추가하겠다”며 “공무원법 위반은 너무 당연하고 업무방해죄 등 여러 가지 혐의가 문제가 된다”고 했습니다.

야권의 총공세에 한 후보는 “자기들 같은 줄 아나 보다”라며 “혹시라도 돈을 주고 고용했다든가 팀을 운영했다든가 한 적이 전혀 없다”고 반박했지만 이미 한 시민단체(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에 의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당한 뒤였죠.

 17일 CBS 라디오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4차 방송 토론회 도중 나경원 후보와 한동훈 후보가 2019년 패스트트랙 공소 취소 부탁 논란을 두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CBS 화면 캡처  

한 후보 입에서 나온 ‘패스트트랙 공소 취소’ 폭로도 야권의 꽃놀이패가 됐습니다. 한 후보가 17일 방송토론회에서 나경원 후보에게 “저한테 본인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 취소해달라고 부탁한 적 있으시죠”라고 말한 게 발단이었습니다. 2019년 패스트트랙 처리를 두고 국회에서 여야 간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을 때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였던 나 후보가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 후보에게 공소 취소를 요청했다는 겁니다. 뜻밖의 폭로에 나 후보는 물론이고 친윤계 및 당내 중진들까지 “동지에게 2차 가해를 하냐”고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한 후보도 하루 만에 이례적으로 “신중하지 못했다”고 사과했고요. 하지만 그렇게 고개를 숙였던 게 내심 억울했던 걸까요, 한 후보는 사과 다음 날 방송토론회에서 또다시 “나 후보는 당시 당직도 아니었고, 개인 차원에서 부탁한 것”이라며 2차전에 돌입했습니다.

19일 서울 양천구 SBS 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 대표 후보 제6차 방송토론회에서 한동훈 후보가 “나경원 후보는 (패스트트랙 공소 취소 부탁 당시) 당직도 아니고 개인 차원으로 나에게 부탁한 것”이라고 하자 격노하며 따져 묻는 모습. SBS 화면 캡처

‘추가 줍줍’에 야당은 신이 났고요. 민주당 한민수 대변인은 “나 후보는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치 운운하지 말고 판사 출신 국회의원으로서 자신이 자행한 공소 취소 청탁 사건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라”고 했고, 조국혁신당도 “전당대회가 끝나면 누가 대표가 되든, 자신의 사건을 청탁했던 나 후보와 그 청탁 사실을 숨겨왔던 한 후보는 나란히 수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15일 천안 서북구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대전·세종·충북·충남 합동연설회에서 한동훈 후보의 정견 발표 도중 각 후보의 지지자들이 충돌하고 있다. 뉴스1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불거진 지지자들 간 물리적 폭력 사태 역시 야권엔 ‘호재’입니다. 그동안 ‘문빠’와 ‘개딸’ 등 주로 민주당 계열 내 골칫거리였던 강성 정치팬덤 문제가 한 후보의 등판과 함께 국민의힘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죠. 한 후보의 팬카페인 ‘위드후니’에는 전당대회가 시작된 이래 투표 수칙과 지방 연설회 참가 인원 모집, 온라인 모니터링 방식 등을 알리는 공지가 연일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한 후보의 총선 책임 실패가 언급될 당 차원의 ‘총선백서’에 맞서 자체 ‘국민백서’도 내겠다고 벼르고 있죠.

‘재명이네 마을’에서 많이 본 듯한 모습입니다. 위드후니 회원 수가 어느덧 9만 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20만 명을 넘어선 재명이네 마을과 곧 맞먹을 수 있을 듯합니다. 이와 관련해 나 후보는 18일 YTN 라디오에서 ‘한 후보의 팬덤이 이재명 강성 지지층인 개딸과 닮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현재 모습은 상당히 그렇게 보인다”며 “우리 당의 전통적인 당원과 매우 다른 행태”라고 했습니다. 민주당 입장에선 강성 팬덤에 대한 중도층의 비판을 국민의힘과 나눠 가질 수 있게 됐으니 호재인 셈입니다.

한동훈 후보 팬클럽 ‘위드후니’의 전당대회 관련 공지

강성 팬덤에 대한 한 후보의 대응도 이재명 전 대표의 초창기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이 전 대표는 재명이네 마을의 ‘이장직’을 맡는가 하면, SNS상에서 지지층에게 당원 가입을 독려하며 “또금만 더 해두때여”라는 글을 직접 올리기도 했었죠. (그렇게 ‘개딸’의 아버지를 자청하던 그는 최근에야 “전화 문자 그만 좀…”이라며 개딸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한 후보는 16일 채널A 토론회에서 “(지지자들을) 자제시킬 의향이 없느냐”는 나 후보의 질문에 “지지자들이 자발적인 지지를 해도 과열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정치인이 직접 나서서 이래라저래라하는 팬덤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연일 “민주당은 개딸 전체주의와 야합하고 있다”, “개딸 전체주의 같은 것은 우리 국민의힘에 발붙일 수 없어야 한다”고 목청놓아 외치던 한 후보가 하기엔 너무도 빈약한 변명 같습니다. ‘한로남불’ 같잖아요.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