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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유원모]수사 단서 흘리는 막장 與전당대회

입력 | 2024-07-21 23:12:00

유원모 사회부 기자



“최순실이 1위, 정윤회가 2위, 박근혜가 3위.”

2014년 12월 당시 박근혜 정부 시절 이른바 ‘십상시’ 문건 사건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던 박관천 전 경정은 ‘우리나라 권력 순위가 어떻게 되는지 아냐’면서 이같이 검찰에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이 발생하기 2년 전 일이었다. 실제 이 말은 국정농단 수사를 거치면서 근거가 전혀 없는 말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법조계에선 “이미 정윤회 사건 때 수사의 단서가 담겨 있었던 거 아니냐”는 얘기가 지금도 회자되기도 한다.

언론사의 기자가 조그만 단서에서 힌트를 얻어 특종을 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수사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한 사건처럼 보이지만 예기치 않은 단서로 인해 대형 게이트로 비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22년 한 사업가가 정치인에게 10억여 원을 건넸지만 청탁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돈을 돌려달라고 수사기관에 고소와 민사상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있었다. 수사가 진행되자 이 정치인이 집 안 천장에 숨겨 놓은 휴대전화가 발견됐다. 그 속에는 2021년 더불어민주당의 전당대회 때 여러 국회의원에게 돈을 뿌린 정황이 담긴 통화 녹음파일이 대거 들어 있었다.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휴대전화 안에 있던 단서가 국회의원 수십 명을 연루시킨 ‘돈봉투 전당대회’ 사건으로 번진 것이다.

수사기관에서 단서를 포착하는 것은 첫 단추를 끼우는 것만큼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의외로 수사의 단서가 쉽게 얻어지는 경우가 있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선거다. 특히 선거 본선보다도 당내 선거에서 수사의 단서가 우수수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멀리 갈 것도 없다. 2021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은 지금까지 이재명 전 대표의 사법리스크로 여겨지는 대장동 의혹이 처음 제기된 때다. 경선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21년 8월 한 언론에서 “이재명 후보님, 화천대유자산관리는 누구 것입니까?”라는 제목의 기사가 공개되면서 대장동 의혹이 불거졌다. 이 언론사의 기자는 지난해 검찰 조사에서 “이낙연 당시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측에서 제보를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보면 과거 폭로성 전당대회는 명함도 못 내민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진흙탕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지금까지 서로를 저격한 발언들을 보면 고발장을 입으로 쓰는 것과 다름없어 보이는 수준이다. 한동훈 후보를 향해 법무부 장관 시절 ‘여론조성팀’을 운영했다는 친윤계 인사의 의혹 제기는 업무방해 혐의가, 한 후보가 나경원 후보를 향해 연 “본인의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의 공소 취소를 부탁했다”는 폭로는 청탁금지법 위반 적용이 되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법조계에선 따져 묻는 경우도 있다.

2007년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박근혜 후보는 서로를 향해 “다스의 실소유주는 이명박”, “박근혜의 뒤에는 최태민(최순실의 아버지)이 있다”며 네거티브 공방을 벌였다. 이들 공세는 정권이 바뀌면서 검찰 수사를 거쳐 일부 사실로 입증됐고, 대통령직을 차지한 두 후보는 끝내 중형을 선고받았다. 지금의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훗날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후보자들 스스로가 돌이켜 봤으면 한다.




유원모 사회부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