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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 시대, 정치가의 임무[내가 만난 명문장/이기일]

입력 | 2024-07-21 22:51:00



“신이 역사 속을 지나갈 때 그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는 것이 정치가의 임무이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

독일은 두 번의 통일을 이뤘다. 첫 번째는 ‘철혈 재상’ 프로이센 왕국 비스마르크의 주도 아래 1871년 독일제국으로 통일된 것이고, 두 번째는 헬무트 콜 총리 재임 당시 1990년 동독과 서독이 재통일을 이룬 것이다.

독일의 재통일은 갑자기 이뤄졌다. 1989년 11월 9일, 새로운 여행법에 관한 기자회견 중 동독의 귄터 샤보브스키가 “서독 여행은 누구나 가능하다”면서 “곧, 지체 없이”라고 잘못 답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동베를린 시민들이 서베를린의 국경을 통과하며 베를린장벽이 붕괴되었다. 콜 총리는 이를 놓치지 않고 통일을 밀어붙였다. 미국 부시 대통령의 지지를 시작으로 영국의 대처 총리와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을 우군으로 만들고, 소련 고르바초프 대통령까지 설득한 결과 1990년 10월 3일 0시에 통일을 이뤘다. 비스마르크의 “신이 역사 속을 지나갈 때 그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는 것이 정치가의 임무”라는 말처럼 우연한 사건으로 독일 통일을 이루는 수완을 보인 셈이다.

신이 역사 속을 지나가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너무도 어렵지만, 그 모습이 훤히 보이는 상황도 있다. 바로 우리나라의 저출생이다. 최근 공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경제보고서에서도 지난해 출산율 0.72명에 대해 ‘월드 챔피언’이라며 ‘한국은 장기적 소멸의 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출생은 생산인구 감소로 경제 규모뿐 아니라 학령인구와 병역자원 감소로 교육 인프라와 국가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교육, 노동, 연금 등 3대 개혁도 마찬가지다. 특히 적립금 규모가 1103조 원인 국민연금은 2041년 수지적자에 이어 2055년 기금 고갈이 예상된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우리는 미래세대를 위한 연금 개혁, 지속가능한 연금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비스마르크가 말한 정치가, 행정가의 임무이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