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 한국 서핑 국가대표팀 감독(오른쪽)이 미국 하와이 출신의 여자 롱보드 월드 챔피언 켈리아 모니즈와 기념 사진을 찍었다. 송민 감독 제공
26일 프랑스에서 개막하는 파리 올림픽에는 32개 종목 329개 금메달이 걸려있다. 그런데 32개 종목 중 서핑은 유일하게 프랑스 본토가 아닌 다른 곳에서 열린다. 서핑 경기 개최지는 파리에서 1만5700km나 떨어진 남태평양의 프랑스령 타히티다. 역대 올림픽 역사상 개최 도시에서 가장 먼 대회장이다.
2021년 도쿄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서핑은 이번이 2번째 올림픽이다. 한국 대표팀은 도쿄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고, 이번 파리 올림픽에도 나가지 못한다.
이달 말 파리 올림픽 서핑이 열리는 타히티에서 한 서퍼가 파도를 하고 있다. AP뉴시스
3년 전 도쿄 대회 때도 서핑은 원래 중계 계획이 없었다. 어느 날 케이블 채널을 통해 해외 중계를 번역이나 자막 없이 실시간으로 경기 화면을 송출한 게 전부였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화면을 시청했다. KBS에서는 급하게 서핑 전문가를 찾다가 송 감독에게 연락을 해왔다.
급작스레 맡게 된 중계였지만 송 감독의 서핑 해설은 대박을 쳤다. “똑같은 파도는 다시 오지 않는다”라는 명언을 비롯해 그가 평소 서핑에 대해 알고 있던 지식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유튜브에서 이 중계 화면은 조회 수가 530만 명이 넘었다.
파리 올림픽 서핑 종목은 28일 오전 2시부터 시작해 오전 시간대에 주로 이뤄진다. 자신을 ‘서핑 영업 사원’이라 칭하는 송 감독은 “프랑스 본토에도 파도가 좋은 곳이 많지만 타히티는 경치가 아름답고, 파도의 힘과 각도가 좋은 곳”이라며 “더 많은 분들께 서핑의 매력을 알리고자 최선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송민 감독과 호주 출신 유명 배우 크리스 햄스워스의 모습. 햄스워스는 서핑 애호가로 둘은 서핑을 하다가 만났다. 송민 감독 제공
중학생이 될 때까지 직접 바다를 본 적도 없는 그는 어떻게 ‘서핑 덕후’가 됐을까. 고교 졸업 후 호주 시드니로 떠난 유학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송 감독은 “처음엔 어학원을 다녔는데 반 친구 대부분이 서핑을 하더라. 초등학생 때 ‘노스 쇼어’라는 서핑 영화를 본 후 항상 서핑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었는데 호주 유학이 좋은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무작정 보드를 사서 혼자 독학으로 서핑을 배웠다. 바닷가에 하루종일 있으면서 잘 타는 사람들의 서핑을 유심히 지켜본 후 이를 흉내 내곤 했다. 틈날 때마다 도서관에 가서 서핑 교본 등을 찾아보기도 했다.
더 오래 서핑을 즐기고 싶어 호주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시드니 공대에 입학해서는 영주권을 받기 쉬운 회계학과 스포츠매니지먼트를 같이 전공했다. 송 감독은 “수업을 3일에 몰아서 듣고 나머지 4일은 슈퍼마켓 등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 일하러 가기 전 해가 떠 있는 시간엔 실컷 서핑을 즐겼다”며 “돌이켜보면 서핑에 미쳐 살았다. 하루 3, 4시간씩 자면서 어렵게 번 돈으로는 방학 때 서핑 천국 인도네시아에 서핑 여행을 가기도 했다”며 웃었다.
송민 감독이 2017년 한국 대표팀을 이끌고 처음 출전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송민 감독 제공
사정이 그랬으니 국내에서 서핑 장비를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호주에 있던 그는 서핑 동호인들을 위해 장비를 대신 구매해주곤 했다. 그러다 2010년에 그는 호주 영주권을 포기하고 국내 귀국 결심을 했다. “서핑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한국에서 서핑을 매력을 더 알려보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부산 해운대에 조그만 서핑숍을 차리고 여름에 가게 운영을 했다. 소수 인원을 대상으로 서핑 강습도 했다. 하지만 워낙 시장이 작다 보니 더 이상을 가게 운영이 쉽지 않은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문을 닫기 직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2010년대 중반 갑자기 서핑 바람이 불더니 쌓여있던 재고가 하나도 남김없이 싹 팔려버린 것이다. 그는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강원도 양양을 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가게도 기사회생하게 됐다”며 웃었다.
지난해 엘살바도르 세계선수권에 출전한 송민 감독과 선수들의 모습. 송민 감독 제공
송 감독은 한국 서핑의 국제무대 진출에도 앞장섰다. 그는 서장현 전 대한서핑협회 회장과 함께 2017년 한국 서핑을 첫 세계선수권대회 무대로 이끈 주역이다.
당시 세계선수권대회는 프랑스 남부 해안에서 열렸는데 한국 대표팀은 파리까지 비행기로 14시간을 날아간 후 곧바로 렌트카로 갈아타고 1000km를 달려 겨우 시간에 늦지 않게 대회장에 도착했다.
‘서핑 버전 쿨러닝’을 연출한 한국 대표팀은 현지 미디어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고, 감독이었던 송 감독은 인터뷰도 했다. 당시 대표팀은 스폰서 없이 자비로 출전했다. 그나마 아는 지인을 통해 태극기가 새겨진 티셔츠를 한 장씩 받은 게 전부였다. 그래도 그 대회는 한국 서핑이 태극 마크를 달고 출전한 첫 세계 대회로 기록됐다.
이후 한국 서핑 대표팀은 2018년 일본 나고야, 2019년 일본 미야자키 세계선수권에 출전했다. 신종 코로라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몇 년을 쉰 뒤 지난해 엘살바도르, 작년엔 푸에르토리코 대회에도 출전했다. 송 감독은 “워낙 잘 알려져있지 않은 종목이다 보니 선수든 지도자든 대부분 자비로 출전해 왔다”며 “파도가 좋은 여러 나라를 가 보는 게 신기하고 좋긴 하지만 경제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양쪽 어깨가 좋지 않은 송민 감독이 밴드를 이용한 재활 운동을 하고 있다. 송민 감독 제공
서핑에서 한참 앞선 일본과 달리 한국과 중국은 후발 주자다. 한국이 처음 세계선수권에 출전한 2017년 대회에 중국도 처음 출전했다.
그런데 불과 7년 만에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중국은 이번 파리올림픽에 14세 선수가 출전한다. 두 대회 연속 올림픽 출전 선수를 만들지 못한 한국과 차이가 난다. 송 감독은 “어찌 보면 2017년에는 우리가 중국보다 앞서 있었다. 그런데 적극적인 투자를 받은 중국 서핑은 몰라볼 정도로 성장한 반면 우리는 여전히 제자리다. 그런 점에서 후배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며 “최선을 다해 2026년 나고야 아시아경기에서 메달을 따는 게 당면 목표”라고 말했다.
대한서핑협회 이사와 감독을 맡고 있는 그는 현재 연세데 대학원에서 스포츠비지니스마케팅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명지대 미래교육원에서는 서핑 강의도 한다. 부산에서는 생업으로 서핑 장비 유통업을 계속 하고 있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바쁘게 사는 그는 걷기와 등산, 웨이트트레이닝 등으로 꾸준히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부산 해운대가 집인 그는 틈날 때마다 해운대 해변을 걷는다. 등산은 추운 날 주로 한다. 부모님 집이 있는 서울에는 주말에 올라와 매주 토요일 관악산 등산모임에 참가한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근육을 늘리기보다는 재활 개념으로 접근한다. 처음 서핑을 배울 때 체계적인 훈련법을 몰라 양쪽 어깨를 크게 다친 그는 일주일에 2, 4차례 재활 피트니스를 한다. 굳어있는 근육을 깨우고 유연성을 유지하기 위해 요가와 필라테스도 해 볼 생각이다.
송민 감독이 서울 청계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헌재 기자
그러나 여전히 그가 가장 행복한 시간은 서핑을 하러 물속에 들어가 있을 때다. 송 감독은 “서핑을 한 시간 한다고 하면 보드 위에서 라이딩 하는 시간은 1, 2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좋은 파도가 올 때를 기다리는 것”이라며 “그렇게 좋은 파도를 잡았을 때의 짜릿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서핑의 매력은 그런 자연과의 교감”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영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도 충분히 서핑을 즐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발목에 연결된 줄이 서퍼를 보호해준다. 물 공포증으로 인해 패닉에만 빠지지 않으면 보드의 부력을 통해 물위로 떠오를 수 있다”며 “꼭 보드를 타지 않아도 파도에 몸을 맡기고 그 에너지를 느끼는 것도 큰 개념으로는 서핑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서핑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더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