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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의 클래식感]24세 지휘자 펠토코스키와 97세 블롬스테트

입력 | 2024-07-22 10:08:00


올해 24세인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지명자 타르모 펠토코스키. 홍콩필 홈페이지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타르모 펠토코스키는 핀란드의 신동 피아니스트였다. 여덟 살 때부터 무대에 선 그는 프란츠 리스트의 피아노곡을 연주하다 유튜브로 리스트에 대해 찾아보았고 리스트의 친구(훗날 사위)인 바그너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열한 살 때 바그너의 음악들을 흥얼거리고 다녔죠.”


친구들도, 가족까지도 별종이라고 놀렸지만 지휘대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지휘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열네 살 때 고향에서 열린 지휘 명교사 요르마 파눌라의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했고 헬싱키 시벨리우스 음악원에 진학해 정식으로 지휘를 배우기 시작했다.


펠토코스키는 도이체 카머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모차르트 교향곡 35, 36, 40번 앨범을 올해 5월 도이체 그라모폰(DG) 레이블로 내놓았다. 그는 이달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차기 음악감독으로 임명됐다. 2년 뒤인 2026년 9월에 취임한다. 2022년 라트비아 국립 교향악단 예술감독이 된 뒤 두 번째로 갖는 오케스트라 감독 직함이다. 그는 2000년 4월생으로 24세다.


펠토코스키는 같은 핀란드인인 클라우스 메켈레보다 네 살 어리다. 메켈레는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이자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며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지명자’다. 그도 시벨리우스 음악원에서 파눌라에게 배웠고 24세 때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지휘자가 됐다.


지휘자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동아일보 DB

파눌라의 제자들로는 에사페카 살로넨, 유카페카 사라스테, 미코 프랑크, 사카리 오라모,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을 지낸 오스모 벤스케 등 스타급 지휘자들이 있다. 메켈레와 펠토코스키는 파눌라 제자 군단의 가장 어린 세대에 속하지만 파눌라는 1993년 시벨리우스 음악원을 공식 퇴임한 뒤에도 이곳에서 계속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올해 94세다.


펠토코스키는 홍콩필을 맡게 된 것이 특히 뜻깊다고 말한다. 현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인 야프 판즈베던은 올해 미국 홍콩필과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직을 마친다. 판즈베던은 홍콩필 재직 시절 ‘아시아 악단과는 그다지 어울려 보이지 않는’ 바그너의 음악극 ‘니벨룽겐의 반지’ 4부작을 녹음했고 이 음반들은 음악전문지 그래머폰의 ‘비평가의 선택’에 오르는 등 높은 평가를 받았다. 펠토코스키는 “홍콩필의 바그너 전통을 내가 잇기 바란다. 이미 바그너는 이 악단의 피에 흐르고 있으므로 높은 수준에서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지휘자 헤르베르트 블롬스테트의 커리어도 펠토코스키나 메켈레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일찍 시작됐다. 27세 때 노르셰핑 심포니 오케스트라, 30세 때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가 됐다.


이달 11일 그는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은 안톤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을 브루크너가 오르가니스트로 재직했던 오스트리아의 장크트 플로리안 수도원에서 연주했다. 콘서트 말미에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스웨덴 노래 ‘이 달콤한 여름날에’를 깜짝 연주했다. 블롬스테트는 옅은 미소를 띤 채 단원들을 바라보았다. 이날은 그의 97번째 생일이었다. 최근 그의 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그의 음악은 ‘연륜이 주는 깊이’ 같은 표현을 넘어 완벽함과 명료함을 전해준다”고 말한다.


최근 방송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과 함께 일한 지휘자 오이빈 피엘스타드(1903∼1983)를 회상했다. “오슬로 필의 경영진은 당시 젊은 나이로 주목받은 저를 수석지휘자로 지명하면서 제 나이와 짧은 커리어를 우려해 당시 59세였던 피엘스타드를 공동 수석지휘자로 임명했죠. 사람들은 젊은 나에 더 관심이 많았지만 피엘스타드는 불편함을 나타내지 않았고 지휘자로서의 나의 성장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음악적 접근도 많은 것을 전해주었습니다.” 1953년 쿠세비츠키 지휘상을 수상한 뒤 블롬스테트는 70년 이상 세계 무대에서 지휘해 왔다.


“경험은 무언가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지휘는 이미 제가 오랫동안 해 온 일입니다.” 블롬스테트가 한 말이 아니다. 요르마 파눌라의 지휘 클래스에 처음 참여한 지 10년째가 되는 펠토코스키의 말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