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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별세… 암울했던 시절을 밝히던 영롱한 노래들

입력 | 2024-07-22 10:38:00


극단 및 소극장 학전을 33년 동안 운영해 온 김민기 대표. 동아일보DB

김민기의 노래에는 가슴 깊은 곳을 뜨겁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 스스로는 어떤 문화나 사상의 상징이 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은둔했지만 광장에 울려 퍼진 그의 노래는 암울했던 시절 마음의 어둠을 몰아내 주었다.

1969년 서울대 미대 회화학과 입학한 김민기는 동문 김영세와 함께 2인조 밴드 ‘도비두’를 결성하며 가요계에 본격 발을 들였다. 서울 명동 YWCA 회관의 ‘청개구리의 집’이 김민기 음악의 태동지였다.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통기타를 부르고 노래하던 이 공간에서 김민기는 1세대 한국 포크 싱어송라이터로 거듭났다.

재동초등학교 동창인 가수 양희은과의 만남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었다. 역시 청개구리의 집에 드나들던 양희은은 한 음악회에서 김민기가 연주하는 아침이슬을 듣고 첫눈에 반했다. 김민기가 찢어버리고 간 악보를 주워다 곡을 달라고 부탁했고, 1971년 발표했다. 당시 정치 상황을 은유하는 듯한 가사가 청년들의 마음을 울렸고 유신 반대 운동에서 불렸다. 1975년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지난해 1월 6일 학전에서 열린 제1회 김광석 노래상 경연대회에서 심사를 맡은 김 대표(오른쪽) 모습. 동아일보DB


김민기가 작사·작곡하고 양희은이 부른 ‘상록수’(1979년)는 빼놓을 수 없는 그의 대표작이다. 김민기가 공장에서 함께 일하며 아침마다 공부를 가르치던 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을 위해 지은 노래다. 김민기의 아름다운 노랫말에 양희은의 맑은 음색이 더해져 ‘서울로 가는 길’ ‘작은 연못’ ‘백구’ ‘아름다운 것들’ ‘봉우리’ 등 이전에는 한국에 없던 노래들이 탄생했다. 양희은은 “김민기는 내 음악의 시작이었고 절정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의 노래가 1970~80년대 저항운동의 상징이 될수록 삶은 고단해졌다. 아침이슬, 상록수가 금지곡으로 지정되고 1971년 낸 솔로 1집 ‘김민기’도 판매 금지 조치 됐다. 전역 후 공장 노동자 생활을 하며 비밀리에 음악 활동을 계속했지만 군사 정권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숱하게 체포되고 취조를 받았다. 한동안 농사를 지으며 음악과 거리를 두기도 했다.

그를 다시 서울로 불러낸 건 그가 ‘못자리 농사’라 표현한 학전이었다. 학전을 차리기 위해 목돈이 필요해진 그는 그간 썼던 노래를 모아 총 4장의 ‘김민기 전집’(1993년)을 발표했다. 1971년 낸 첫 음반이 판매 금지 조치 된 후 처음으로 정식 발표한 음반이었다. 이후 가수로서는 공식 은퇴했다.

“나 이제 가노라/저 거친 광야에/서러움 모두 버리고/나 이제 가노라…”(‘아침이슬’ 중에서)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