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전 ⓒ 뉴스1
배우를 ‘(무대) 앞것’으로, 자신을 ‘뒷것’으로 부르며 어두운 곳에서 묵묵히 비빌 언덕이 되어준 사람. 가수이자 극단 학전(學田) 대표였던 고 김민기 얘기다. 그의 인생을 되돌아봤다.
●군부 시절 청춘들 마음 울린 김민기의 노래
서울 명동 YWCA 회관 ‘청개구리의 집’이 그의 음악의 태동지였다.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통기타를 부르고 노래하던 이 공간에서 그는 날개를 달았다.
특히 사랑과 이별 이야기에서 벗어나 삶을 성찰한 한 편의 시 같은 아름다운 가사는 한국전쟁 후 새로운 문화에 목말라 있던 청춘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아침이슬’ ‘상록수’ ‘작은 연못’ ‘백구’ ‘봉우리’ 등 이전에는 한국에 없던 노래들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가수 한영애는 “중학교 때부터 김민기의 노랫말을 들으며 자랐다. 광장에서, 대학가에서, 어느 곳에서든지 김민기 노래가 늘 울려 퍼져 제게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노래가 1970~80년대 저항운동의 상징이 될수록 삶은 고단해졌다. 아침이슬, 상록수가 금지곡으로 지정되고 1971년 낸 솔로 1집 ‘김민기’도 판매 금지 조치 됐다. 전역 후 공장 노동자 생활을 하며 비밀리에 음악 활동을 계속했지만 군사 정권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숱하게 체포되고 취조를 받았다. 한동안 지방에서 농사를 지으며 음악과 거리를 뒀다.
그를 다시 서울로 불러낸 건 학전이었다. 학전을 차리기 위해 목돈이 필요해진 그는 그간 썼던 노래를 모아 총 4장의 ‘김민기 전집’(1993년)을 발표했다. 1971년 낸 첫 음반이 판매 금지 조치 된 후 처음으로 정식 발표한 음반이었다.
●공연계 일군 ‘어른 김민기’
대학로 소극장의 상징으로 꼽히는 ‘학전’을 30여 년간 운영하며 후배 예술인을 배출해 온 가수 김민기가 21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22일 공연예술계에 따르면 김민기는 전날 지병인 위암 증세가 악화해 세상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이미영 씨와 슬하 2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뉴스1 DB)2024.7.22
굵직한 배우들도 숱하게 배출했다. 스타 배우들의 ‘사관학교’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관객들에게 ‘독수리 오형제’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배우 황정민 설경구 장현성 조승우 김윤석이 대표적이다. 배우 장현성은 “졸업 후 용돈을 벌어야 해서 학전 입단 오디션을 본 게 배우 인생의 시작이었다. 학전에서 작품들을 공부하며 내적으로도 많은 성장을 이뤘다”고 했다.
대외적 성과뿐만이 아니다. 당시 무법지대나 다름없던 공연계에서 수익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배우와 스탭들을 대상으로 표준계약서를 작성하고, 출연 횟수 등 기여도에 따라 월급에 인센티브를 더해 수익을 나눴다. 학전 출신 배우 오지혜는 “힘없는 연극 배우가 일반 극단에서 계약서 쓰고 공연한다는 건 상상도 못 했던 시절”이라며 “까마득한 후배들을 언제나 존중하셨다. 본인이 모르는 분야는 최고의 전문가들을 초빙해서 가르친 뒤 무대에 올렸다”고 회고했다.
●‘뒷것’ 자처한 김민기 학전 폐관 결정
(옛)학전 아르코꿈밭극장 건물 외경 (예술위원회 제공)
학전을 보존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위탁 운영을 의논하기도 했다. 김민기가 없어도 학전 이름을 유지하며 명맥은 잇자는 것이었으나 결국 무산됐다. 김민기와 가장 가까이 지내며 폐관 전 마지막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기획한 가수 박학기는 “위탁 운영하다가 담당자가 이리저리 바뀌면 (학전 이름만 유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게 민기 형님의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권력과 극도로 거리를 두며 영원한 ‘뒷것’으로서 학전을 순수한 예술인의 공간으로 지켜 온 김민기의 철학이 반영된 결정이기도 하다. 박학기는 “지난해부터 많은 정치인들에게서 전화가 온다. 하지만 민기 형님은 (그들의 행동이) ‘나를 위한 게 아니라 소모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학전 폐관의 직접적인 이유는 김민기의 건강 악화였다. 위암이 간으로 전이돼 당장 수술이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방사선 치료를 하고 있지만 치료를 거듭할수록 체력이 고갈되고 통증이 심해져 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였다. 학전 출신 배우 이황의는 “마지막으로 본 게 작년 12월 31일 송년회였다. 치료가 힘든지 기운이 없었다. 모자 쓰고 지팡이 짚고 나와서 ‘고맙다’ ‘미안하다’ 말만 했다”고 말했다. 김민기의 고등, 대학교 동창이자 60년 지기 친구 이도성 씨는 “민기가 항상 말랐었는데 지난해 가을 민기의 둘째 아들 결혼식에서 보니 많이 부었었다”며 “최근 문병 갔다온 후배들이 민기가 대화도 어렵고 찾아온 사람들 상대하기도 힘들어하는 상태라고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