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박물관 ‘아담한 필촉’展 李, 이광수와 소설 삽화 고민 나눠… 현충사 중건때 이순신 영정 제작 한국 최초의 만화가 이도영, 최초 서양화가 고희동 작품 등 1920년대 미술기자 전성기 조명
“이순신의 얼굴을 어떠한 어른으로 꾸밀지 한참 생각하였다. 용감한 무장으로 그리면 족할까, 아니 아니 춘원(이광수)의 말씀을 들으면 지, 덕, 용을 갖춘 어른의 얼굴로 그려야 할 것이다.”
한국적 산수의 전형을 만든 청전 이상범(1897∼1972)은 삽화를 그리는 신문사 미술기자로도 오랫동안 활동했다. 그는 1931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이광수 소설 ‘이순신’의 삽화를 그릴 때 고민을 글로 남겼다. 청전은 “무장, 도덕 군자, 선비의 얼굴을 혼합했다”며 “순전히 내 머리에서 빚어낸 얼굴을 후세가 어떻게 비평할지 모르겠다”고 썼다. 그 후 청전은 현충사 중건 과정에서 필요하게 된 이순신 영정도 제작한다.
청전처럼 20세기 신문사에서 기자 또는 사원 직함을 달고 전속 화가로 활동한 ‘미술기자’를 조명하는 전시 ‘아담한 필촉: 기자가 그려낸 신문 삽화 미장센’이 12일 서울 종로구 신문박물관에서 개막했다.
서울 종로구 신문박물관의 ‘아담한 필촉: 기자가 그려낸 신문 삽화 미장센’ 전시에 선보인 청전 이상범의 삽화와 이순신 장군 영정. 신문박물관 제공
신문사에 소속돼 활동한 최초의 미술기자는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도 불리는 고희동이다. 동아일보 창간 동인으로 참여한 고희동은 안석주, 이마동, 이승만 등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도 대거 신문사로 영입해 미술기자 시대를 열었다.
● 미술기자 전성시대
신문박물관 ‘아담한 필촉: 기자가 그려낸 신문 삽화 미장센’ 전시에 진열 중인 청전 이상범의 1950, 60년대 제작 삽화 병풍. 신문박물관 제공
당시 신문 소설은 지금의 영상 콘텐츠처럼 많은 사람들이 즐겨 보는 오락의 수단이기도 했다. 신문사들은 소설을 비롯한 문예 지면이 상업성과 경쟁력이 있다고 보고 전문 미술인을 채용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체계적인 미술 교육을 받거나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해 능력을 인정받은 화가들이 삽화 제작에 활발히 참여했다. 당시 동아일보의 이상범, 조선일보 노수현, 매일신보 이승만은 ‘삽화계 삼대 천왕’으로 불리며 당대 신문 삽화 미술의 부흥을 이끌었다.
전시 후반부는 1930년대 이후 신문사를 떠난 미술기자들이 영화감독, 미술가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에 종사하는 과정을 그린다. 안석주(1901∼1950)는 삽화가로 기른 재능을 영화 연출에 활용했는데, 그가 남긴 흑백 유성영화 ‘심청’이 상영된다. 한국화가 천경자와 ‘고바우 영감’의 작가 김성환의 1960, 70년대 소설 삽화와 만평도 전시된다. 9월 8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