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의혹을 받는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이 22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뉴스1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시세 조종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온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현 경영쇄신위원장·사진)가 23일 구속됐다. 검찰과 금융당국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수사에 착수한 지 1년 5개월 만이다.
카카오가 2006년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서울남부지법 한정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 위원장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연 뒤 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고, 도망할 염려가 있다“라며 영장 발부 이유를 밝혔다.
김 위원장이 구속되며 지난해 11월부터 8개월간 이어져 온 검찰 수사도 곧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창업주가 구속된 카카오의 경영은 향후 ‘시계 제로’ 상태에 놓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 檢 PPT 200여 장-의견서 1000쪽 준비
전날(22일) 오후 1시 44분경 서울남부지법에 도착한 김 위원장은 ‘시세 조종 혐의를 인정하나’, ‘어떻게 소명할 예정인가’ 등 언론의 질문에 일절 답변하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10여 초 만에 법정으로 들어갔다.
오후 6시까지 약 4시간 10여 분간 이어진 영장심사에서 장대규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7기)는 파워포인트(PPT) 자료 200여 장을 준비해 김 위원장의 혐의를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에 앞서 1000쪽 분량의 의견서도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오후 6시경 영장심사를 마치고 서울 구로구 서울남부구치소로 이동해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대기했다.
법조계에선 지난해 2월 시작된 카카오 주가 조작 관련 수사가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카카오가 에스엠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쟁사인 하이브의 공개 매수를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에스엠 주식을 단기간에 대량 매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주식 대량 매입 계획을 미리 보고받고 승인도 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 카카오, 창사 이래 최대 위기
김 위원장의 구속으로 카카오는 2006년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국내 대표적인 정보기술(IT) 플랫폼인 이른바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플러스, 쿠팡, 배달의민족)’ 중 창업주가 구속된 것은 카카오가 처음이다.
카카오는 충격에 휩싸인 분위기다. 김 위원장 본인이 혐의를 적극 부인해 왔고 최근에는 임원들을 모아 본인의 결백을 주장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대기업 창업주인 만큼 도주의 우려가 없는데도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카카오와 공모해 에스엠 주식의 시세를 조종했다는 혐의를 받는 사모펀드 운용사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가 22일 보석으로 풀려난 것과도 모순된다”고 주장했다.
카카오는 김 위원장의 결정이 필요한 신사업 투자 및 경영 쇄신 등의 작업도 차질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회사 안팎에선 지난해 12월부터 고강도 쇄신을 주도해온 김 위원장의 부재 탓에 계열사별 개선안 마련과 자회사 매각 작업도 멈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 신사업 발굴, 지배구조 개편 등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도 차질이 예상된다. 현재 카카오는 카카오VX , 카카오게임즈, 카카오페이, 에스엠엔터 등 자회사 매각 여부를 검토 중이다.
향후 김 위원장이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거나, 양벌규정에 따라 카카오 법인에 벌금형이 내려지면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에 따라 카카오뱅크 1대 주주 지위를 내려놔야 할 수도 있다. 한 카카오 임원은 “카카오의 혁신이 위축될까 우려스럽다”며 “사법 리스크에 발이 묶여 조직 문화가 보수적으로 변하면 제2의 카카오톡은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최원영 기자 o0@donga.com
장은지 기자 j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