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의혹을 받는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이 22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2024.7.22. 뉴스1
“마음이 흐트러질 때 손가락을 베어 혈서를 썼다. 그것도 3번이나.”
23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김범수 카카오 CA 협의체 공동의장 겸 경영쇄신위원장이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재수를 할 때 혈서까지 쓰면서 독하게 공부했다는 얘기다. 그의 악착같은 성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다.
정보통신(IT)업계 등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주변 사람들에게 가난에 대한 트라우마를 종종 토로했다고 한다. 그의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아버지는 막노동과 목공일을 했고, 어머니는 식당 일을 했다. 아버지가 한 때 정육 도매업을 했지만 이마저도 성공하지 못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극복해야 한다는 일념이 공부를 하고 또 한게임과 카카오 등을 성공시킨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면서 “하지만 성공을 위해 앞만보고 달려오게 한 원인이었을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1986년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입학했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이재웅 다음 창업자, 김정주 넥슨 창업자 등도 86학번이다. IT 업계에서는 이들을 ‘86학번 황금세대’라 부른다.
김 위원장의 대학 생활은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고스톱과 포커, 당구 등에 푹 빠져 지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낭비가 아닌 창업을 위한 밑거름이었다. 1992년 삼성 SDS에 들어간 그는 1996년 PC통신 유니텔 개발을 담당했다. 이 곳에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를 비롯해 김정호 전 NHN 글로벌 게임사업 총괄, 남궁훈 카카오게임즈 대표이사 등을 만난다.
특히 김 위원장은 1998년 남궁 전 대표와 함께 한양대학교 앞에 PC방을 차렸다. PC방 창업과 PC방 관리 프로그램으로 돈을 모은 뒤 1998년 게임 업체 ‘한게임’을 창업했다. 고스톱과 포커 등의 게임을 제공했고 출시 1년 만에 세계 게임 사이트 1위에 올랐다. 김 위원장이 대학 시절 푹 빠져 있던 게임을 온라인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한게임이 말 그대로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2007년 김 위원장은 돌연 NHN에서 퇴사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3년간의 미국 생활에서 돌아온 김 위원장은 곧바로 카카오톡을 만들었다. 미국에서 애플의 스마트폰을 접한 뒤 새로운 모바일 시대가 열릴 것을 직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PC 통신 유니텔 시절 직접 만나 떠들고 웃던 사람들이 갑자기 채팅을 한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연결된 세상’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된 배경이다.
카카오톡으로 회사를 키운 김 위원장은 ‘빅딜’로 승부수를 띄웠다. 카카오는 2014년 국내 포털 업체 다음과 합병을 했고, 2016년엔 국내 최대 음악 서비스 멜론을 사들였다. ‘새로운 회사가 시장에 나오면 빨리 인수해야 한다’는 철학에서다. 적극적인 인수·합병으로 카카오 계열사는 한 때 150개에 달하는 계열사를 거느렸다.
하지만 이같은 확장 일변도식 기업 경영에 대해 ‘문어발식 경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기도 했다. 회사 덩치만 키울 뿐 질적 성장에 대한 고민이 적자는 비판이 이어졌다.
카카오모빌리티의 택시 호출 독과점 논란, 매출 부풀리기 의혹, 카카오 계열사들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 및 플랫폼 지배 논란, 서비스 도용 및 표절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2021년 11월 류영진 전 카카오페이 대표 등 회사 임원 8명이 상장 한 달여 만에 주식매수청구권(스톡옵션)을 행사해 880억 원을 현금화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영진의 도덕성이 도마위에 오르기도 했다.
카카오는 지난해 10월 비상 경영을 선언하고 올해 초 그룹 쇄신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CA 협의체를 발족했다. 김 위원장이 직접 경영쇄신위원장을 맡으면서 그룹 체질 개선과 계열사 정리 등 쇄신 작업에 나섰다. 그 결과 150개에 달하던 계열사 수는 현재 120여 개로 줄었다. 계열사 매각 등 추가적인 개편 작업도 예고한 상황이다.
그러나 23일 김 위원장의 구속으로 카카오 개혁 동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IT 업계 임원은 “카카오가 직면한 위기와 정체는 김 위원장이 돌파해야 하는데, 구속이 되면서 쇄신 동력을 잃은 건 부정할 수 없다”며 “IT 업계 큰 형님인 카카오가 흔들리면 IT 업계 전반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