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지시는 장관이 받아들이면 장관 지시 장관은 자기 이름으로 책임지는 자리 장관 지시 잘못 없으면 대통령으로 소급 못해 공수처는 수사 질질 끌지 말고 결과 내놔야
송평인 논설위원
국방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 각 군 참모총장과 국방부 검찰단장을 지휘·감독한다.
채 상병 사건에서 이종섭 국방장관(이하 모두 당시 직급)은 해병대 참모총장 격인 김계환 사령관에게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의 직무상 상관은 김 사령관이다. 박 단장은 군 사법경찰관이다. 군 사법경찰관은 직무상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박 단장의 직무는 수사 및 그와 연계된 이첩 등의 업무다. 군 사법경찰관은 유감스럽지만 군 검사와 달리 상관 명령의 적법성과 정당성에 대해 이견이 있을 때도 이의 제기를 할 권한이 없다.
박 단장은 김 사령관이 이첩 보류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김 사령관은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청문회에 계속 빠지고 있으나 민주당은 그의 불출석만은 문제 삼지 않는다. 다만 부사령관을 포함해 주변인들은 모두 김 사령관이 이첩 보류 지시를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박 단장이 지시를 어기고 이첩을 강행하는 바람에 항명이 되면서 사건은 국방부 검찰단으로 넘어갔다. 이후에는 이 장관의 직접 지휘·감독하에 있는 국방부 검찰단장이 박 단장이 수사한 내용에서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몇몇에 대한 혐의 적용만 빼고 그대로 경찰에 이첩했다.
다른 하나는 박 단장의 수사보고서에 초급장교와 부사관에게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는 내용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상관의 지시를 따르는 것 외에는 어떤 권한도 없었기 때문에 경찰 수사에서 무혐의 처리됐다. 박 단장의 수사보고서는 액면으로도 앞뒤가 안 맞았다.
전화번호 ‘02-800-7070’으로 이 장관에게 전화한 사람이 누구라는 걸 다 알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다. 단지 이 장관이 말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 장관에게 전화로 뭔가를 지시했다고 해도 여기서는 문제 될 것이 없다.
대통령은 장관에게 지시할 수 있다. 주요한 국정은 다 대통령이 장관에게 지시해서 이뤄진다. 다만 그 지시가 부당하다면 장관은 거부할 수 있다. 아니 거부해야 한다. 그러나 장관이 수긍하고 부처에 지시했다면 그 지시는 장관의 지시가 된다. 장관은 책임지라고 있는 자리다. 장관이 책임지기 싫으면 장관 자리를 그만두면 된다. 그것이 장관이 장관 아닌 다른 공무원과 다른 점이다. 19세기 프랑스에 책임지지 않는다는 조건이라면 장관 자리를 맡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철학자 키르케고르가 조롱한 바 있다.
이 장관의 지시는 경찰 수사 결과와 일치하지 않았어도 적법했지만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온 덕분에 정당성까지 얻었다. 장관과 대통령 사이에 있었던 일은 더 따져 볼 필요도 없다.
지금 논란이 되는 대부분의 사건은 ‘김건희 특혜 조사’를 포함해 대통령 쪽이 불필요한 고집을 부려 빚어졌다. 김 여사는 일반인보다 가혹하게 범죄 혐의를 적용받아서도 안 되지만 대통령 부인이라고 쉽게 범죄 혐의를 빠져나가서도 안 된다. 일반인이 주가조작에 계좌가 연루됐다면 4년 가까이 지나 검찰청사 밖에서 조사받을 수 있겠나.
다만 채 상병 사건은 이 정도로 끝내야 한다. 임 사단장 구명 시도가 있었고 거기에 ‘김건희 커넥션’이 있었다면 그것은 따로 수사해도 된다(물론 나 같으면 민주당 쪽의 수상한 변호사가 만들어내는 의혹은 더 철저히 검증하겠다). 채 상병 사건은 ‘김건희 커넥션’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통령과 장관 사이가 단절돼 있어 수사 외압으로 처벌할 수 없다. 공수처는 질질 끌면서 언론플레이나 하지 말고 신속히 수사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