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신임 정재연 강원대 총장 인터뷰 ‘실사구시’ 바탕한 교육과 연구… 통해 지역 맞춤형 인재 양성 강릉원주대와 통합…‘공유-연합-통합’의 복합형 모델로 운영 춘천·원주·강릉·삼척 4개 캠퍼스,지속 가능한 특성화에 총력 서울대 80% 수준으로 재정 확충… ‘서울대 10개 만들기’ 출발점 “교내에서 강원대 행복 찾고자 집무실 자주 비우는 총장될 것”
정재연 총장이 강원대 마스코트인 ‘곰두리’ 캐릭터 굿즈를 들고 학교 브랜드 이미지 강화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원대 제공
예상을 벗어난 취임 포부였다. 국립대학교의 수장에게서 좀처럼 듣기 힘든 얘기였다. 식상한 인사 치레가 아니어서 신선했고, 울림마저 느껴졌다. 수도권 대학을 우선시하는 국내 대학 생태계에서 강원대 구성원들의 바람을 요약한 말처럼 들렸다. 학생들이 크게 공감할 것 같았다.
이달 11일 강원대 13대 총장으로 취임한 정재연(56) 총장의 얘기다. 그는 공인 회계사 출신이다. 기업의 모든 활동을 샅샅이 훑고,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전문가다. 지난 2월 총장 1순위 후보자로 선정되고, 임용 재가까지 4개월 동안에도 그런 경험을 최대한 활용했다.
이달 18일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강원대 총장실에서 정 총장이 구상한 계획과 실현 가능성을 들어봤다.
- 총장 선거 내내, 그리고 취임식에서도 강원대의 지속 발전 가능한 가치와 지식을 찾겠다고 했는데, 그게 무언가?
“강원대 대학헌장 첫 문구가 이렇게 시작한다. ‘강원대는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가르침과 배움의 근본으로 삼아 인류의 지적 지평을 일궈나가는 학술 공동체다.’ 지역과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교육과 연구를 지향하자는 얘기다.
강원지역의 국립대인 강원대는 지난해 국립 강릉원주국립대와 통합을 위한 첫걸음을 시작했다. ‘강원 1도 1국립대학 추진’을 위한 실행합의서를 체결한 것. 강원도 전체의 교육과 연구 역량을 모으고 강화해 경쟁력을 끌어 올리기 위한 결정이었다. 두 학교는 인터뷰 이틀 전인 이달 16일에도 통합을 위한 업무협의를 가졌다. 두 학교의 통합은 2026년 3월 1일로 예정돼 있다.
통합 결정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강원대는 지난해 교육부로부터 ‘글로컬대학 30’(2026년까지 비수도권 대학 30곳을 지정해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정책) 사업 지원 대학으로도 선정됐다. 이러한 두 학교의 행보에 다른 지역의 거점 국립대와 지방 사립대가 주목하고 있다.
“통합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유기적, 화학적 결합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따라붙었다. 그런데 강원대는 이미 삼척대와의 통합을 경험했다. 그 때 발생한 문제점을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강릉원주대와의 통합은 다른 차원으로 접근할 계획이다.
강릉원주대와 통합하면 강원대는 춘천, 삼척, 강릉, 원주 등 4곳에 캠퍼스를 갖게 된다. 이를 활용해 ‘강원 1도 1국립대학’은 공유-연합-통합의 복합형 모델로 운영할 계획이다.”
- 복합형 모델은 어떤 의미인가?
“캠퍼스별로 비교 우위에 있는 것들은 서로 공유하고, 집중 교육이나 창업 프로그램 등은 하나로 운영하며, 규모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학과나 대학기관들은 통합하자는 것이다.”
- 4개 캠퍼스별로 특성화를 하겠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그렇다. 춘천캠퍼스는 정밀 의료, 바이오 헬스, 데이터 산업 중심으로 운영된다. 동시에 교육 연구 거점이 된다. 삼척캠퍼스는 액화 수소, 에이징 테크, 재난 방재 분야를 중심으로 특성화되고, 지역 산업 거점으로 육성된다. 강릉 캠퍼스는 신소재, 해양생명, 관광, 천연물 바이오 분야 중심으로 키워진다. 또 지학연 협력거점이 된다. 원주캠퍼스는 디지털 헬스 케어, E-모빌리티, 반도체 분야로 특성화를 추진한다. 여기에 산학 협력 거점으로 초점을 맞춘다.
이처럼 캠퍼스별로 강점을 살리면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도 유지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자율과 책임 운영을 할 생각이다. 각 캠퍼스마다 책임 부총장들을 두고, 인사, 재정, 기획, 입시 등을 책임지게 할 계획이다.”
- 학사 구조도 바뀌나?
“수도권과의 거리를 감안할 때 영동지역 캠퍼스의 지원율은 영서지역 캠퍼스보다 낮을 수 있다. 전체적으로 학령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4개 캠퍼스끼리 입시 측면에서 경쟁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들을 최소화하고, 상호 협력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고민 중이다.
일단 지속 가능한 학사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대학 통합 이후 멀티 캠퍼스 기반으로 재구조화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여러 학과를 통합하고 대규모로 학생을 뽑는 ‘탑 클래스’ 통합학과 신설을 고려 중이다.지역 산업 특성화 계약학과도 신설할 계획이다. 기존 학과를 전환하는 경우도 있을테고, 필요에 따라 새로운 색깔을 입힐 수도 있다.
정원이 없는 미래융합가상학과에 대한 반응도 좋다. ‘마이크로 디그리’(부전공보다 작은 단위의 학점당 학위제)도 시행해보고 학생들의 호응이 좋으면 정규학과로 전환시키는 로드맵도 갖고 있다. 미래 방위 산업에 필요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 등의 기술과 환경을 다루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디지털밀리터리 학과 신설도 성과다.”
- 취업 환경에서 지역적인 한계가 있다. 캠퍼스 특성화 못잖게 지역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어떤 식으로 동기를 부여할 계획인가?
“지역 산업 대부분이 서비스업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제조업도 적다. 수도권 학생 비중이 높은데, 이들이 졸업 후 취업을 위해 수도권으로 다시 유출되기도 한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지역 내 기업 등과의 협력을 통해 학생들이 강원지역에 남고 정주할 수 있도록 계속 연구하고 일할 기회를 만들어주고, 인센티브를 주고, 돕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본다. 학생들과 지역 주민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창업할 수 있도록 교육, 멘토링, 자금 지원도 하고 있다.
교수-학생-기업이 참여하는 공동 프로젝트를 적극 유도할 계획도 있다. 프로젝트가 잘 되면 학생들이 같이 호흡을 맞춘 기업에 남으려는 의지를 보인다.
창의적인 교육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미국 세인트존스 대학은 강의가 없는 수업을 운영한다. ‘그레이트 북스’(Great Books) 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 주요 고전 작품을 읽고 교수가 어떤 주제를 던지면 학생들이 현재 사회 이슈 등과 연계해 열띤 토론을 주고 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앞서 춘천시가 교육 발전 특구로 선정되면서 초, 중, 고교 학생들을 위해 이 수업을 도입했다. 이런 수업을 강원대 학생들에게 접목시켜 추진할 계획이다.”
교수 역량 강화는 대학 혁신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다. 정 총장도 이를 인식하고 총장 선거에서 “더 이상 교수들의 열정 페이는 없다”고 약속했다. 지원 시스템을 강화하고 경쟁력 있는 보상 체계를 도입하겠다는 뜻이었다.
- (계획이 성공하려면) 우수 교수를 붙잡아야 할텐데….
“우수 교수 확보를 위해서 국가 거점 국립대학으로서 강원대가 보유한 안정적인 연구 환경 등을 적극 홍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교수들이 지역 특화 산업과 연계한 협력 프로젝트 등을 통해 만들어낸 성과를 산업현장에 적용할 기회도 제공할 생각이다. 교수들이 지역에 기여하는 성과 등을 인센티브와 연계하는 식으로, 대학 평가 시스템도 바꾸겠다.”
- 대학 재정 1조 원 시대를 열겠다고 했는데….
“(목표 달성을 위한 방안으로) 재학생 충원율 제고, 외국인 유학생 유치, 국가 지원금과 지자치 지원금 확보, 산업 협력 성과 극대화, 대학 자체 수익 사업 활성화 등을 제시했다. ‘1조 원’이라는 단어는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재정 1조 원 시대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제안과도 연결이 된다. 서울대의 학생 1인당 교육비가 5800만 원 정도인데, 대학이 학생 교육에 투자한 액수다. 반면 현재 거점 국립대는 2000만 원 수준이다.
지방 국립대 재정을 1조 원으로 늘리면 서울대의 80% 수준까지 올라간다. 재정 확충을 통해 거점 국립대의 교육과 연구 여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고, 지역경제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또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본다.”
- 강원대 학생들은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강원대의 이미지는 등록금 싸고, 수도권과 가까운 국립대라는 정도다. 서울과 춘천 캠퍼스는 승용차로 1시간 거리다. 그런데 학생들의 심리적 거리감은 더 멀다. 대전이나 충주 정도에 있는 국립대로 느낀다. 강원도뿐만 아니라 전국을 아우르는 국립대학으로서 이미지 개선이 있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학생들의 바람이 있다. 크게는 공부하고 생활하는데 편하고, 즐거워야 한다는 요구다. 학교 복지나 기숙사, 식당, 도서관 등에 대해서 개선되길 기대하는 것이다.
서울이나 수도권 사립대와 비교해 심적으로 ‘디프레스’ 되는 부분도 있다. 최근 총학생회장하고 얘기를 했더니 강원대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달라고 하더라. 어디에서든 강원대를 다닌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싶어한다는 뜻이다.
학생들은 외부에 자랑할만한 수단으로 대학 축제, 캐릭터 등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학교 상징이 반달곰인데, 이를 활용해 곰두리 캐릭터를 만들었다. 전국 대학 중 최고의 캐릭터로 만들려 한다. 대학 브랜딩 홍보도 더 확대할 계획이다. 4개 캠퍼스마다 ‘핫 플레이스’를 개척하고 스토리텔링도 입히고 싶다.
선배들과의 멘토링 체계도 제대로 만들겠다. 매주 수요일 오후 시간 취업 강좌가 있다. ‘취업·창업과 꿈 설계 특강’이라고 하는데 학과별로 존경할만한 선배들과의 소통하는 시간으로, 효과가 크다.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앞날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던져준다.”
- ‘글로컬 대학 30’ 사업에 선정됐는데, 후속 방안은?
“지역 혁신 생태계의 중심으로서 학생들이 떠나지 않게 하고, 지역 소멸을 막아야 한다. 이런 사업들을 추진하면서 목표와 성과를 정기적으로 평가할 계획이다. 평가 과정에서 학생, 교수, 직원 등 이해 관계자의 피드백도 적극 반영하겠다. 글로컬대학 사업추진단을 중심으로 사업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예산 집행이나 성과 달성 여부 등을 투명하게 관리할 생각이다. 총장실에 앉아 있을 시간이 없을 것 같다.”
실제로 정 총장은 취임 이후 분초를 쪼개 쓸 만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앞으로도 학교 구석구석을 바쁘게 찾아다닐 생각이다. 정 총장은 인터뷰 다음 날 각오를 다지려는 듯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로필 표지에 쇼팬하우어의 말을 올려놨다. “행복을 외부에서 찾지 마라. 그럴 수록 우리는 불안하고 위태로워진다. 행복은 우리 내부에 있다.”
춘천=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