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관객수 1, 2위 1000만 돌파 3∼9위까지는 100만명대 머물러 OTT 인기에 극장 찾는 발길 줄어 할리우드 흥행작 맞설 작품 부족
‘1000만 명 vs 100만 명.’
최근 한국 영화계 현장에서는 이런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 흥행 성적이 ‘대박’(상업영화 기준 1000만 명 이상) 혹은 ‘쪽박’(100만 명 이하)으로 양극화되고 작품별 쏠림 현상이 심화되는 현실을 압축적으로 담은 것이다.
올해 인지도 높은 배우와 이색 소재로 ‘중박’ 이상의 흥행을 노린 작품 성적은 시원치 않다. ‘탈주’(195만 명), ‘하이재킹’(174만 명), ‘핸섬가이즈’(161만 명)가 200만 명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하이재킹’(6월 21일), ‘핸섬가이즈’(6월 26일), ‘탈주’(7월 3일) 등 ‘비슷한 규모’의 영화가 연달아 개봉한 점을 실패 원인으로 지적한다.
톱스타도 흥행 보증수표가 되지 못하고 있다. 탕웨이, 박보검, 수지 등 호화 캐스팅으로 관심을 끈 영화 ‘원더랜드’는 지난달 5일 개봉했지만 관객 62만 명에 그쳤다. 올해 여름 텐트폴(거액의 제작비와 유명 배우를 동원해 흥행을 노리는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은 제작비(185억 원)가 투입된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고 이선균의 유작으로 주목받았으나 열흘 동안 61만 명만 들었다.
영화계에선 한국 영화의 투자가 위축된 점을 원인으로 꼽는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작품이 몰리고,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 줄어들면서 대작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1억9000만 달러(약 2629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가 투입된 ‘듄: 파트2’ 같은 미국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견줄 만한 체급이 없어졌다. 한 영화제작사 대표는 “한국 영화에 대한 투자가 꽁꽁 얼어붙어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기존 흥행 공식에 매몰돼 재밌는 이야기를 발굴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신파, 스타 배우를 동원했을 뿐 색다른 시나리오나 완성도 높은 연출은 도외시했다는 것이다. 다른 제작사 대표는 “괜찮은 시나리오가 OTT 드라마 시장으로 넘어갔다”며 “팬데믹 때 개봉하지 못했던 ‘묵은 작품’들을 이제야 개봉하니 최근 콘텐츠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한 탓도 있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