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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이 힘 못쓰던 온라인, 해리스가 장악했다

입력 | 2024-07-24 09:50:00

해리스 조롱 각종 밈들, 지지 밈으로 재편집돼 큰 인기
"버릇은 없지만 쿨한 신세대" "어려운 환경 이겨낸 인물"
흑인 여자 아이에 수갑 장면 트럼프 수갑 장면으로 둔갑



ⓒ뉴시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악의적으로 묘사해온 각종 밈들이 한순간에 그를 미화하는 밈으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2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밈으로 활용하기 딱 알맞은 캐릭터다. 허술하지만 한껏 흥이 난 모습으로 춤을 추고, 말투도 매우 독특하다. 잘 웃고 스스로를 비하하기도 일쑤다. 지금까지 이런 특징들은 그에게 손해였다.

2023년 연설에서 해리스가 “너희들은 코코넛 나무에서 뚝 떨어진 존재라고 생각하느냐”고 말하자 공화당 유튜브 채널이 이 장면을 뚝 떼어내 해리스를 덜떨어진 토크쇼 진행자처럼 보인다거나 흥분해서 소리를 지른 것이라는 논평을 달아 내보냈다. 선거 유세에서 춤추는 모습은 움찔거리는 것으로 묘사됐다. 최악의 밈은 2020년 대선 때 나왔다. 바로 전직 검사 해리스를 “경찰”로 묘사한 밈이다. 통합 좌파, 흑인 인플루언서, 공화당이 해리스를 반동적이거나 아니면 위선적이라고 몰아가면서 사용한 밈이다.

그러나 현재 이들 밈이 전부 역전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해리스 부통령을 자신을 대신할 후보로 지명한 뒤 카멀라의 옛 밈들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해석은 정반대다.

온라인 팬들이 해리스의 발언들을 매력적인 인터넷 발언으로 바꿔 놓았다. 코코넛 나무 발언에는 “너는 네가 살아온 모든 과정과 너보다 앞선 것들 속에서 존재한다”라고 말한 뒷 발언이 따라 붙으면서 어려운 환경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인 사람이 할 수 있는 멋진 말로 포장되고 있다.

온라인서 해리스 지지가 트럼프 압도

“브랫(brat)”세대라는 말을 유행시킨 가수 찰리 XCX의 노래와 함께 해리스가 춤을 추는 영상도 나왔다. 버릇이 없다는 뜻의 브랫 이라는 단어를 붙인 이 용어는 ‘버릇은 없지만 쿨한 신세대’라는 의미로 쓰인다. 해리스는 이 영상에서 실수가 잦지만 멋진 팝스타인 것처럼 묘사된다.

“카멀라 해리스는 경찰”이라는 영상도 새롭게 만들어졌다. 지지자들은 해리스가 과장된 윙크를 보내는 장면이 대선 승리를 보장하는 장면이라고 포장했다.

후보자의 카리스마를 평가하는 방식은 과거 “그와 함께 맥주를 마시고 싶은가”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해리스의 특징을 대중음악과 효과적으로 합성함으로써 환상적 결과를 내는 멋진 동영상을 만드는데 하루 저녁을 쏟을 용의가 있느냐”는 식이다.

이 모든 것들이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온라인 열기를 압도하는 분위기다. MAGA 광팬들은 중범죄 유죄 평결에도 의기양양한 트럼프의 모습을 강조하는 등 모든 약점을 강점으로 포장해 왔다. 한때 민주당 진영이 이에 제대로 맞서지 못하는 분위기였으나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코코넛 나무 발언이 영화 매트릭스의 장면을 본 따 “나는 코코넛 출신”이라고 외치며 힘든 대통령 선거 판세를 한순간에 뒤집는 장면으로 묘사된다. 해리스를 헐뜯는 것으로 유명한 장면들은 혼란스러운 대선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는 느낌으로 전환됐다. 바이든이 몇 달 동안 사퇴 요구를 거부하면서 한껏 고조됐던 걱정들이 한순간에 해리스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진 것이다. 해리스에 대한 온라인 지지자들은 한껏 취한 듯한 분위기다.

카멀라를 헐뜯는 밈들은 종종 으스대는 무식쟁이라는 비난을 깔고 있다. “누구라도 과거의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what can be, unburdened by what has been)”는 캐치프레이즈를 열정적으로 강조하는 모습의 밈을 공화당 전국위원회가 널리 유포했으나 지금은 해리스 지지자들이 퍼트리고 있다. 다소 문법적으로 어색한 구절을 외치는 장면을 반복해서 내보내는 이 밈이 틱톡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지지자들이 이 장면을 DJ가 만들어낸 흥미로운 소리 모음으로 재구성했다.

우파 인플루언서들이 해리스의 말실수에 꼬투리를 잡으면서 “고난 탈출(unburdened)”이라는 단어가 “마르크스주의적이며 루시퍼(사탄)적인 주문으로 받아들이기 쉽다”는 글이 X에서 인기를 끌었다.

“고난 탈출” 밈은 바이든이 횡설수설하는 장면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해리스는 그런 우려와는 거리가 멀다. 이제 “고난 탈출” 밈은 할 말을 효과적으로 축약해 당당하게 밝히는 장면으로 받아들여진다.

온라인에서 고전하던 바이든과는 정반대

바이든은 틱톡에서 항상 조롱을 받았다. 이 때문에 틱톡의 사용을 금지하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바이든 캠프가 제작한 바이든의 아바타가 눈에서 레이저 광선을 내쏘는 “다크 브랜든(Dark Brandon)” 밈은 인기를 끌지 못했다. 오히려 바이든이 헤매다가 넘어지고 얼어붙는 여러 장면들과 함께 유통됐다.

바이든이 사퇴한 직후 익명으로 글을 쓰는 사회민주주의자 인플루언서 제임스 메들럭이 2019년 해리스를 공격한 밈을 X에 다시 올렸다. 경찰복을 입은 해리스가 한껏 웃는 모습으로 흑인 어린이에게 수갑을 채우는 장면이다. 메들럭은 “기억하라. 이제 우리는 카멀라에 대한 좌파의 지지, 마르크스주의자 아버지를 언급하지 말고 그가 모든 범죄자를 잡아넣을 경찰이라고 말해야 한다. 이번에는 승리해야 한다”고 썼다. 그러자 다른 사용자가 해리스가 수갑을 채우는 어린이 자리에 도널드 트럼프를 합성한 장면을 올렸다. 이어서 찰리 XCX로 바꾼 사진도 올라왔다.

카멀라 해리스가 찰리 XCX를 체포하는 장면이나 테일러 스위프트 노래에 맞춰 카멀라의 코코넛을 자르는 장면은 의미가 선명하지 않지만 인터넷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만들어낸 해리스 밈이 인기를 끌면서 온라인에서 해리스를 백악관에 진입시키려는 열기가 뜨거운 것이다. 해리스가 지나치게 진보적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들에게는 장난스러운 밈들이 방어벽이 되고 있다. 인터넷에서 해리스와 같은 기성 정치인에 대한 지지 운동이 활발해지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러나 적어도 재미는 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