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과잉-전기차 판매 부진 겹쳐 고점서 85% 폭락에도 “바닥 아냐” 이젠 저렴한 리튬 가격이 뉴노멀 배터리-전기차 값 동반 하락 예상
‘하얀 석유’로 불리던 리튬 가격의 추락이 심상찮다. 고점에서 85% 넘게 폭락했는데도 아직 바닥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으로 수년간 리튬 공급과잉이 이어지면서 저렴한 리튬 가격이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자리 잡게 됐다.
● “리튬 시장 앞으로 4∼5년은 공급과잉”
올봄 잠시 반등하는가 싶었던 리튬 가격이 다시 추락했다. 22일 상하이선물거래소의 탄산리튬 가격은 t당 8만5500위안(약 1만1731달러). 2021년 3월 이후 3년 4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2022년 11월 최고 가격(59만7500위안, 약 8만2000달러)과 비교하면 7분의 1토막 났다.
이에 비해 리튬 수요는 예상만큼 늘지 않는다. 전기차 시장이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에 빠진 영향이다. 완성차 제조사가 줄줄이 전기차 확대 계획에 제동을 걸면서 배터리 제조사의 리튬 주문은 급감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중국 전기차에 대한 수입 관세를 대폭 인상한 것도 리튬 수요를 위축시켰다.
컨설팅기업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BMI)는 2025년 리튬 공급이 올해보다 32% 늘어나 수요 증가율 23%를 크게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공급과 수요가 다시 균형을 찾는 시점은 2029년으로 제시했다. 앞으로 4∼5년은 공급과잉이 이어진다는 뜻이다.
BMI의 사브린 초우두리 애널리스트는 “빠르게 확대된 글로벌 공급이 리튬 시장을 공급과잉으로 몰고 있다”면서 “리튬 가격은 5∼10년 동안 2022년 최고치보다 낮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씨티그룹은 최근 보고서에서 “늘어난 재고로 인해 리튬 가격이 15∼20% 더 하락해 t당 1만 달러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 전기차 가격 하락 기대감 커져
‘백색 황금’으로 불리던 리튬 가격이 추락하고 있다. 사진은 칠레 SQM 공장에서 생산된 리튬. 안토파가스타=AP 뉴시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의 최근 배터리팩 가격은 kWh(킬로와트시)당 75달러로, 2023년 초(151달러)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으로 이미 떨어졌다(리튬인산철 배터리 기준). 전기차와 내연기관 차량 가격이 같아지는 기준점으로 여겨지는 kWh당 100달러를 한참 밑돈다. 실제 지난해 중국에서 판매된 전기차 중 3분의 2는 동급 내연기관 차량보다 저렴했다.
‘소금물서 직접 리튬 추출’ 신기술 투자 경쟁
리튬 가격 추락
아직 중국보다 배터리 가격이 높은 다른 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골드만삭스는 미국의 배터리팩 가격이 2023년 kWh당 151달러에서 2025년 91달러로 40% 하락할 것으로 내다본다. 내년이면 보조금 없이도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와 가격이 비슷해지는 전환점이 올 거란 전망이다. 골드만삭스의 고타 유자와 애널리스트는 “지금은 하이브리드 차량이 더 많은 주목을 받지만 비용이 낮아지면 전기차 이점이 다시 주목받게 될 것”이라며 “자동차 제조사는 향후 몇 년 동안 (배터리·반도체 같은) 핵심 전기차 기술을 축적하기 위해 단호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다.
리튬 가격 폭락으로 기존 리튬 생산기업은 비용을 줄이며 버텨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전히 투자가 활발한 분야도 있다. 직접리튬추출(DLE·direct lithium extraction) 기술이다.
직접리튬추출이란 물을 증발시키지 않고도 소금물에서 리튬을 추출해내는 신기술. 자연 증발로 리튬을 얻으려면 최대 18개월이 걸리지만 직접리튬추출은 1∼2일이면 된다.
직접리튬추출은 리튬 생산의 ‘게임체인저’로 불리지만, 리튬 가격이 높을 땐 관심이 덜했다. 업계가 효율성 향상에 절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칠레 ESK컨설팅의 하이메 알리 대표는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생산 시간이 더욱 중요해지면서 직접리튬추출 기술이 더 선호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스타트업이 주도해 온 이 신기술 개발에 대형 석유기업이 속속 뛰어드는 추세다. 미국 정유기업 엑손모빌은 2027년부터 미국 아칸소에서 직접리튬추출 방식으로 리튬을 대량생산하기 위한 투자에 나섰다. 미국 석유회사 옥시덴털 페트롤리움도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에 상업용 리튬생산시설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