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균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어쩌면 이런 인간의 본성을 잘 알기에 법률은 사람들이 쉽게 빠지는, 한번 빠지면 극복하기 너무나 힘든 착각들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장치들을 해놓았다. 무죄 추정의 원칙, 합리적 의심의 기준 등. 사법 판단에는 크게 두 가지 오류가 있다.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는 처벌 오류와 진범을 놓치는 무처벌 오류. 당연히 둘 다 피하고 싶다. 죄 없는 사람이 처벌받으면 절대 안 되지만, 동시에 나쁜 놈은 꼭 잡아야 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 둘은 상충관계(trade-off)이고, 하나를 줄이고 싶으면 다른 하나를 감수해야 한다. 법은 명확하다. 무처벌 오류를 감수하더라도 처벌 오류를 줄이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아홉 명의 도둑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감옥에 보내면 안 된다. 그래야 죄를 짓지 않은 나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관련 연구에 따르면, 일반 사람들은 무처벌 오류와 처벌 오류 둘 다 똑같이 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어떤 오류를 더 피하고 싶냐는 질문에 거의 50 대 50으로 대답한다. 반면에 경찰, 검사, 판사는 다르다. 정확히 일반인<경찰<검사<판사의 순서로 처벌 오류를 더 강하게 피하려 한다. 그러니 일반인은 분명히 범인인 거 같은데, 그 모두가 경찰에 잡혀가지 않고, 수사받은 모든 사람이 입건·기소되지 않고, 기소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지 않는다. 이것이 정확하게 법의 원칙대로 되고 있는 것이다. 경찰, 검사, 판사들은 수많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각자의 역할에 맞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은 대부분은 별걱정 없이 살고 있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