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에 등장한 김 여사 ‘개 사과’ 정무감각으로 한동훈 당선 기여 이젠 윤 대통령 부부가 한계 인정해야 제2부속실 설치해 국민 신뢰 회복하길
한동훈 국민의힘 신임 당대표가 23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4차 전당대회에서 당원들을 향해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한동훈 압승의 팔 할은 김건희 여사의 힘이라고 본다.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 초반, 김 여사는 디올백 수수 사과에 관해 한동훈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보낸 문자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선수로 등장했다. 경선 막판인 20일엔 검찰총장 패싱 ‘여왕 조사’를 받은 것이 드러나 무더운 여름 다수 국민을 더 열받게 했다.
당 대표를 뽑는 ARS 투표와 일반국민 여론조사가 21∼22일 진행되는 걸 김 여사가 알고도 그 전날 나선 것이라면, 대선 캠프 시절 ‘개 사과’를 연상케 하는 정무감각이다. 이 나라가 ‘검사 위에 여사’의 나라란 말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때 들고나왔던 공정과 상식은 정녕 개나 주라는 건가?
민심은 윤 대통령에게 이미 두 번의 경고를 보냈다. 작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와 4·10총선 때 회초리를 들었으면 대통령은 아픈 척이라도 해야 했다. 윤 대통령이 달라지기는커녕 이번엔 김 여사까지 한동훈의 당 대표 당선을 막으려 드니 마침내 당심마저 돌아선 것이다. 대통령도 아닌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실을, 대한민국을 지켜온 보수 집권당을, 심지어 국법과 국민을 우롱하는 것까지 봐줬다간 저 불안하고 불길한 거야 대표한테 나라가 넘어갈 듯싶었던 거다.
대통령 부부는 완패했다. 이제는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달라져야 한다.
당선 직후 한동훈은 김 여사의 비공개 검찰 조사를 놓고 “국민의 눈높이를 고려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동의할 수 없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렇게 민심과 동떨어진 채 V1, V2 심기만 챙기는 인사가 대통령실 고위직에 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 그러니 윤 대통령의 ‘격노’와 김 여사의 ‘개입’에 국가 에너지가 소모되고 민생은 도탄에 빠지는 것이다.
2년 10개월을 이렇게 보낼 순 없다. 한동훈은 대표 수락 연설에서 국민이 명령한 변화로 민심에 대한 반응을 첫손에 꼽았다. 제2부속실과 특별감찰관 설치를 최우선 처리하기 바란다. 윤 대통령과의 면담도 좋고, 당정협의도 좋고, ‘약속 대련’이나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도 좋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 눈에는 사소한 문제일지 몰라도 국민의 눈에는 그렇지 않다. 입만 열면 ‘법치’를 강조하는 검찰 출신 대통령이 자기 부인은 ‘법 위’에 두어선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한다. 제2부속실은 단순히 김 여사의 일정과 업무를 보좌하는 게 아니다. 대통령실 업무 계통을 명확히 함으로써 대통령 부인이 국정과 인사와 당무와 이해관계에 관여하는 일이 없음을 명명백백히 하는 조직이다. 김 여사 문제부터 처리해야 윤 대통령 지지율이 움직이고 그 힘으로 개혁과 정책을 성공시켜 정권 재창출의 희망도 살릴 수 있다.
안타깝지만 이젠 윤 대통령이 한계를 인정할 때다. 어쩌면 한동훈은 노태우의 길을 갈지 모른다. 물론 그는 총선 때 제2의 6·29선언을 하지 못했다. 윤 대통령의 가슴통과 한동훈의 전략은 그때 그 사람들만 못했고 국힘은 정권 재창출은커녕 당의 화합도 불안한 상태다. 그럼에도 지금으로선 윤 대통령의 ‘검찰 통치’ ‘여사 정치’를 제어하고 거야 대표와 맞설 수 있는 사람은 검찰과 대통령을 잘 아는 한동훈뿐이라는 기대가 있다.
영민한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연초 “노태우 대통령은 (전두환을) 백담사까지만 보냈기 때문에 본인도 나중에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역사 바로 세우기에 들어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민심을 먼저 생각하라는 일침이었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