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영화로 읊다]〈86〉기록속의 여인-상상속의 여인(2)
북경을 다녀온 사신들에 의해 계문란의 사연은 조선에까지 알려졌다. 남편이 피살된 뒤 청나라 사람에게 팔려 심양으로 간 강남 여인의 기구한 운명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 홍세태(洪世泰·1653∼1725)가 쓴 다음 시가 특히 유명하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영화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1979년)에도 독일 패전 후 기구한 삶을 살게 된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결혼식 이틀 만에 군인 남편과 생이별한 마리아 브라운은 종전 뒤 남편이 전사했단 소식에 절망한다. 그녀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바에 나가 미군들을 접대하다가 빌이란 군인과 동거하게 된다. 빌과의 사이에 아이가 생겼을 무렵 남편 헤르만이 돌아오고, 남편과 빌의 실랑이 와중에 마리아는 우발적으로 빌을 죽이게 된다.
영화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에서 마리아는 남편이 있음에도 미군 병사와 교제한 자신의 선택이 전쟁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음을 밝힌다.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제공
마리아 브라운의 삶이 패전 뒤 경제 기적을 이루며 다시 일어선 서독의 현실과 대응된다면, 계문란의 일은 청나라에 패한 뒤 조선이 겪은 비극과 중첩된다. 시인 역시 조선의 잡혀간 여인들을 떠올리며 애처로운 자고새로 계문란을 형상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조선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트라우마를 이역의 여인을 통해 치유받고자 했지만, 그들이 상상한 계문란은 차츰 실상과 다른 존재가 되어 갔다. 감독이 기구한 운명의 여인을 통해 전후 독일 사회에 대한 냉소적 인식을 드러낸 것처럼, 시인들이 계문란을 바라보는 윤리적 강박은 당대 조선 사회의 심리적 상흔을 시사한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