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기구한 여인의 운명 향해… 사회적 시선은 차갑기만

입력 | 2024-07-25 03:00:00

[한시를 영화로 읊다]〈86〉기록속의 여인-상상속의 여인(2)





북경을 다녀온 사신들에 의해 계문란의 사연은 조선에까지 알려졌다. 남편이 피살된 뒤 청나라 사람에게 팔려 심양으로 간 강남 여인의 기구한 운명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 홍세태(洪世泰·1653∼1725)가 쓴 다음 시가 특히 유명하다.

시인은 청나라에 가본 적조차 없지만 김석주가 보여준 계문란의 시를 읽곤 위 시를 남겼다. 강남의 텃새이기도 한 자고새의 울음소리는 길이 험난해 갈 수 없다는 말처럼 들려서(行不得也哥哥)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낼 때 쓰이곤 한다. 시인은 계문란의 비극을 둥지 잃고 비바람에 놀라 날아가는 자고새에 빗대 애달파했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영화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1979년)에도 독일 패전 후 기구한 삶을 살게 된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결혼식 이틀 만에 군인 남편과 생이별한 마리아 브라운은 종전 뒤 남편이 전사했단 소식에 절망한다. 그녀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바에 나가 미군들을 접대하다가 빌이란 군인과 동거하게 된다. 빌과의 사이에 아이가 생겼을 무렵 남편 헤르만이 돌아오고, 남편과 빌의 실랑이 와중에 마리아는 우발적으로 빌을 죽이게 된다.

조선 지식인들에게 계문란의 처신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들은 남편이 죽은 뒤 정절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몸을 더럽히느니 자진(自盡)하는 것이 마땅하다거나, 지아비를 잃은 뒤 다른 남자를 따라갔다고 탓하기까지 했다. 홍만조(洪萬朝·1645∼1725)는 계문란을 조롱하여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인데 꽃다운 나이에 죽었으면 불쌍히라도 여겼을 것이라고 읊었다(‘嘲季文蘭’).

영화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에서 마리아는 남편이 있음에도 미군 병사와 교제한 자신의 선택이 전쟁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음을 밝힌다.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제공 

영화 속 마리아 브라운의 행적도 세상으로부터 질타를 받는다. 군사법정의 재판장은 마리아가 남편이 전쟁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호스티스로 미군에게 접근한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한다. 마리아는 당당하게 빌은 좋아했고 남편은 사랑했다고 말한다. 이후에도 마리아는 돈 많은 사업가와 교제해서 거액의 유산 상속을 받게 되지만 남편을 결코 잊지 못한다.

마리아 브라운의 삶이 패전 뒤 경제 기적을 이루며 다시 일어선 서독의 현실과 대응된다면, 계문란의 일은 청나라에 패한 뒤 조선이 겪은 비극과 중첩된다. 시인 역시 조선의 잡혀간 여인들을 떠올리며 애처로운 자고새로 계문란을 형상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조선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트라우마를 이역의 여인을 통해 치유받고자 했지만, 그들이 상상한 계문란은 차츰 실상과 다른 존재가 되어 갔다. 감독이 기구한 운명의 여인을 통해 전후 독일 사회에 대한 냉소적 인식을 드러낸 것처럼, 시인들이 계문란을 바라보는 윤리적 강박은 당대 조선 사회의 심리적 상흔을 시사한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