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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복지 정책,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기고/전호철]

입력 | 2024-07-26 03:00:00

전호철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최근 몇 년 새 ‘유례없는 겨울 한파’와 ‘기상관측 사상 가장 무더운 여름’이라는 뉴스는 일상이 됐고 전기 등 공공요금 고지서는 폭탄처럼 느껴진다. 그나마 형편이 나으면 조금 덜 따뜻하고 덜 시원하게 살며 생활비를 아끼면 되겠지만 에너지 빈곤층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적정한 에너지 사용은 인간이 최소한의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조건이자 에너지 복지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2005년 경기 광주시의 한 여중생이 전기 요금을 내지 못해 촛불을 켜고 자다 화재로 사망하면서 국내에서 에너지 복지 논의가 시작됐다. 이후 2015년 에너지 바우처 제도가 시행됐고 도시가스·전기·지역난방 요금 지원 제도도 있지만 현재 우리 에너지 복지 정책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먼저 모든 지원 제도에 유사한 기준이 적용되다 보니 일부 가구가 에너지 바우처를 지원받으면서 에너지 공급사의 요금 경감 혜택도 중복으로 받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반면 지원 대상임에도 이를 몰라 신청하지 못하는 가구도 많아 에너지 바우처 집행률은 매년 낮아지고 있다.

에너지 복지가 에너지 공급사의 요금 지원 등 가격 정책에 치중돼 있다는 점도 문제다. 시장 경제에서 가격은 효율적인 자원 배분의 중추다. 물론 에너지 취약계층을 위한 요금 지원도 필요하나 지나친 에너지 가격 왜곡은 시장 경제의 효율 저하로 이어진다. 지난해 기준 한국전력이 202조4000억 원, 한국가스공사가 47조4000억 원의 부채를 떠안은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는 머잖아 급격한 요금 인상 등 큰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

1970년대 석유 파동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며 에너지 빈곤이 사회문제가 된 후 오랜 경험으로 에너지 복지 정책을 정착시킨 영국의 사례를 보자. 영국은 정부와 지자체 주도로 에너지 공급사의 참여를 유도한다. 특히 연료비 지원 제도는 소득 향상을 목적으로 ‘노동연금부’가 담당하는데, 이는 에너지 공급 문제가 아닌 복지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세밀한 지원 기준을 마련하고 지원 대상이 되면 자동 지급한다. 최근에는 탄소중립을 위해 효율 개선 사업 위주로 에너지 복지 정책이 재편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제 우리도 이런 사례를 교훈 삼아 정책을 전환할 때가 됐다. 기후 변화에 따른 에너지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위기 때 저소득층에 저렴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단순한 관점에서 벗어나 ‘복지’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효율적인 에너지 복지를 위한 촘촘한 지원 기준과 상세한 통계 정비도 필요하다. 결국 이러한 과제는 정부 주도로만 실현할 수 있으며 에너지 공급자도 이를 뒷받침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지속 가능하고 효과적인 에너지 정책의 기틀은 에너지 복지를 ‘복지’ 영역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전호철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