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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대신 ‘뇌파’로 체스 말 옮겨… 휙휙 바뀌는 판에 기자 ‘진땀’

입력 | 2024-07-26 03:00:00

美뉴럴링크 ‘뇌-컴퓨터 칩 이식’ 첫 임상 환자를 만나다
사지마비 환자 뇌에 칩 장치 이식… 컴퓨터로 뇌파 전달해 커서 조작
기자와 체스 게임 대결 압승 거둬
뉴럴링크, 첫 임상 기술 문제 해결… 올 하반기 두 번째 임상 돌입할 듯





뉴럴링크의 N1 임플란트 칩. 지름 23mm, 높이 8mm 크기의 원판에 64가닥의 실이 붙어 있는 형태다. 실에는 한 가닥에 16개씩 총 1024개의 전극이 부착돼 있다. 전극은 뇌의 활동을 기록한다. 과학동아·뉴럴링크 제공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Brain-Computer Interface)가 없는 세상은 상상하고 싶지 않아요. BCI 수술을 받기 전엔 문자 한 통을 보내는 데에도 15분이 걸렸어요. 웹서핑과 게임을 하는 건 꿈도 못 꿨죠. 언젠간 이 임상연구에 더이상 참여하지 않게 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가진 것을 그냥 즐기려고 해요.” 지난달 21일(현지 시간) 미국 애리조나주의 소도시 유마에서 만난 사지마비 환자인 놀런드 아보 씨(30·사진)는 자신의 머릿속에 삽입된 BCI 기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전기차 테슬라와 우주기업 스페이스X를 창업한 일론 머스크의 또다른 창업기업 뉴럴링크의 첫 임상시험 환자였다. 뉴럴링크의 첫 임상시험 환자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것은 국내 매체로는이번이 처음이다.》


뉴럴링크는 머스크가 공동 창업자로 참여한 BCI 기술 개발 기업이다. BCI는 칩의 형태로 만든 장치로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첨단 기술이다. 뉴럴링크는 지름이 23mm, 높이가 8mm인 ‘N1 임플란트 칩’을 뇌에 삽입해 뇌파를 측정하고 이를 통해 컴퓨터를 작동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지난해 9월 뉴럴링크는 첫 임상시험에 참가할 사지마비 환자를 모집하고 올해 1월 29일 실제 사람에게 칩을 삽입하는 수술을 진행했다. 아보 씨가 첫 임상시험 주인공이었다. 그는 미국 텍사스 A&M대에 재학 중이던 8년 전 호수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사지마비가 됐다. 운동을 좋아했던 그는 갑작스러운 신체의 변화에 적응해야만 했다. 스스로 오랜 시간 노력한 결과 스틱을 입에 물고 터치해 태블릿PC나 휴대전화를 가까스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아보 씨는 그의 머릿속에 삽입한 지름 23mm의 뉴럴링크 BCI 칩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꿨다고 강조했다. 그는 “누군가 내게서 수술받았던 기억을 지워버린다면 머리에 칩을 이식했다는 걸 인지조차 못 할 정도로 아무 느낌이 없었다”며 “수술한 지 하루 만에 퇴원했다”고 말했다.

수술 경과는 3월 20일 공식 X(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됐다. 뉴럴링크는 그가 생각만으로 컴퓨터 커서를 움직여 능수능란하게 체스 게임을 하는 모습을 생중계했다. 5월 8일 뉴럴링크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임상시험 중간 결과에선 놀라운 마우스 커서 제어 속도를 보였다.

뉴럴링크 첫 임상시험 참가자 놀런드 아보 씨(왼쪽)와 기자의 체스 대결. 아보 씨는 뉴럴링크 칩을 이용해 생각만으로 체스 말을 원하는 위치에 정확하게 옮겼다. 과학동아·뉴럴링크 제공

40×40개의 격자에서 무작위로 색이 변하는 1개의 격자를 빠르게 클릭하는 ‘웹그리드’ 게임도 했다. 첫 번째 시도에서 지금까지 발표된 전 세계 BCI 임상시험 중 최고 기록인 4.6BPS(Bit Per Second·초당 정보전달 속도)를 기록했다. 이후 시도에서는 속도가 8.0BPS까지 도달했다. 같은 게임을 직접 해 본 결과 받은 점수인 8.67BPS와 큰 차이가 없었다.

BCI 속도가 실제로 얼마나 빠른지 확인하기 위해 아보 씨의 자택에서 체스로 직접 겨뤄봤다. 딸깍딸깍 마우스를 바삐 움직이는 동안 그는 생각만으로 거침없이 체스 말을 옮겼다. 체스 말이 워낙 빨리 움직여서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자꾸 놓쳤다. 몇 분 뒤 대결은 그의 압승으로 끝났다.

뉴럴링크의 첫 임상시험에서는 예상치 못한 문제도 발견됐다. 수술을 받은 지 몇 주 뒤부터 뇌에 삽입한 칩이 읽어내는 뇌파가 줄어들며 마우스 커서 제어 속도가 크게 감소한 것이다. N1 임플란트 칩은 64가닥의 실이 붙어 있고 실에 뇌파를 읽는 전극이 달려 있다. 수술 이후 시간이 경과하며 칩의 실 부분이 일부 뇌 바깥으로 빠져나온 것이다.

아보 씨는 “칩은 두개골에 고정돼 있기 때문에 실의 미묘한 움직임이 느껴지지는 않았다”며 “수술 후 두피 봉합, 뇌 박동 등의 이유로 실이 빠져나올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후 뉴럴링크는 칩이 뇌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알고리즘을 수정하고 움직인 실 위치에서 뇌파를 재인식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개선했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 신기술인 뉴럴링크 칩 기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생길 법도 하지만 아보 씨는 “평생 뉴럴링크를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칩으로 최대 6년 동안 임상시험 연구에 참여할 수 있다”며 “다음 세대 뉴럴링크 칩을 이식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럴링크의 두 번째 임상시험은 올해 하반기에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첫 번째 임상시험 결과를 토대로 개선해야 하는 점 중 하나는 기존에 3∼5mm 깊이로 심었던 실을 8mm 깊이로 뇌에 더 깊숙이 삽입하는 것이다. 7월 10일 머스크는 X의 생중계를 통해 두 번째 임상시험 일정을 발표하며 “올해 안에 한 자릿수 후반의 임상시험 참가자가 확보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뉴럴링크 첫 임상시험 환자 놀런드 아보 씨를 현지에서 만난 인터뷰를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애리조나=김진화 동아사이언스 기자 evolut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