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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네, 나의 이웃들[고수리의 관계의 재발견]

입력 | 2024-07-25 22:57:00




“작가님이시죠?” 단골 카페 주인이 말을 걸었다. 한동네에 산 지 10년, 그간 오가며 인사만 나누던 사이였는데 실은 그는 내 글까지 찾아 읽어본 독자였다. “불편하실까 봐 조용히 알고만 있었어요.” 그런 그가 뜻밖의 제안을 건넸다. “작가님, 동네 상점에서 북토크 열어보시면 어떨까요?”

고수리 에세이스트

알고 보니 카페 주인은 동네 상권 활성화 사업 기획자였다. 언제부턴가 오래된 골목에 작은 상점들이 하나둘 들어섰다. 젊은 상인들의 상점은 토박이 상점들과도 옹기종기 잘 어울려 정겨우면서도 명랑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경쟁보단 화합, 상인들은 뜻을 모아 생활상권 추진위원회를 결성했고, 귀여운 동네 캐릭터와 상점 안내서를 만들어 동네 축제를 열었다. 벌써 5년째 이어진 축제는 제법 안정되어서 상권 활성화는 물론, 주민들의 유대감도 끈끈하게 이어주었다. 편한 차림으로 동네를 나서면 상점마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아이도 노인도 환대하고 배려하는 분위기가 정말 사람 사는 동네 같아서 뿌듯하리만큼 좋았다. 나도 기꺼이 동참하고 싶었다.

자주 카페에 모여 행사를 기획했다. 동네 아티스트가 추천하는 동네 상점에서 예술 행사를 열어 보자고. 아티스트들과 상인들이 함께 현장 사진을 찍어 포스터를 만들고, 로컬 큐레이터와 협업해 열심히 홍보도 했다. 뭐랄까. 동네 친구들과 의기투합해서 우당탕탕 뭔가를 만들어 보는 기분. 모처럼 마음껏 즐거웠다. ‘오뎅바’에서 드로잉 전시가, 카페에서 밴드 공연과 요가 수련이 열렸다. 그리고 나는 심야식당에서 북토크를 열었다. 내 단골 가게, 전북 군산에서 상경한 젊은 사장님이 운영하는 심야식당이었다.

초여름 밤, 조그만 식당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사장님이 갓 만들어 내준 깐풍가지에 맥주를 홀짝거리며 책을 낭독했다. 요즘 마음에 남아 있는 단어는 무엇인가요? 여유, 발걸음, 자유, 소소함, 모남과 열림 등등 마음의 단어들이 오고 갔다. 기획자로 함께했던 카페 주인이 얘기했다.

“산책이요. 자영업을 하다 보면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날 순 없어요. 무례한 손님을 맞닥뜨리거나 오지 않는 손님을 마냥 기다릴 때도 많죠. 관계의 부침으로 맘고생한 날에는 귀갓길에 아주 긴 산책을 해요. 동네 골목부터 천변까지 한두 시간씩 무작정 걷는 거죠. 그럼 한결 나아지거든요.” 몰랐던 속마음을 들으며 비로소 한 사람을 알게 된 것 같았다. 밤이 깊도록 우리는 긴긴 대화를 나누었다. 시름과 걱정은 여기 두고, 오늘의 낭만과 추억만 가져가자고. 손님, 작가님, 사장님 모두모두 손을 흔들며 익숙한 골목길에서 헤어졌다.

집으로 산책하듯 걸어갔다. 골목길에 조르르 불 꺼진 상점들이 어쩐지 따스하게 느껴졌다. 그곳을 오가며 인사 나누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간판마다 반짝 불이 켜질 때, 커피를 내리고 음식을 만들고 매대를 정리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의 다정한 이웃들과 어우렁더우렁 지내 보고 싶었다. 그러니 나도, 반겨주고픈 좋은 이웃이 되어야지. 눈 감고도 걸어갈 수 있는 우리 동네를 새삼 애틋하게 걸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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