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이시죠?” 단골 카페 주인이 말을 걸었다. 한동네에 산 지 10년, 그간 오가며 인사만 나누던 사이였는데 실은 그는 내 글까지 찾아 읽어본 독자였다. “불편하실까 봐 조용히 알고만 있었어요.” 그런 그가 뜻밖의 제안을 건넸다. “작가님, 동네 상점에서 북토크 열어보시면 어떨까요?”
고수리 에세이스트
초여름 밤, 조그만 식당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사장님이 갓 만들어 내준 깐풍가지에 맥주를 홀짝거리며 책을 낭독했다. 요즘 마음에 남아 있는 단어는 무엇인가요? 여유, 발걸음, 자유, 소소함, 모남과 열림 등등 마음의 단어들이 오고 갔다. 기획자로 함께했던 카페 주인이 얘기했다.
“산책이요. 자영업을 하다 보면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날 순 없어요. 무례한 손님을 맞닥뜨리거나 오지 않는 손님을 마냥 기다릴 때도 많죠. 관계의 부침으로 맘고생한 날에는 귀갓길에 아주 긴 산책을 해요. 동네 골목부터 천변까지 한두 시간씩 무작정 걷는 거죠. 그럼 한결 나아지거든요.” 몰랐던 속마음을 들으며 비로소 한 사람을 알게 된 것 같았다. 밤이 깊도록 우리는 긴긴 대화를 나누었다. 시름과 걱정은 여기 두고, 오늘의 낭만과 추억만 가져가자고. 손님, 작가님, 사장님 모두모두 손을 흔들며 익숙한 골목길에서 헤어졌다.
집으로 산책하듯 걸어갔다. 골목길에 조르르 불 꺼진 상점들이 어쩐지 따스하게 느껴졌다. 그곳을 오가며 인사 나누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간판마다 반짝 불이 켜질 때, 커피를 내리고 음식을 만들고 매대를 정리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의 다정한 이웃들과 어우렁더우렁 지내 보고 싶었다. 그러니 나도, 반겨주고픈 좋은 이웃이 되어야지. 눈 감고도 걸어갈 수 있는 우리 동네를 새삼 애틋하게 걸어 보았다.
고수리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