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기반의 전자상거래 업체 큐텐이 한국에 이름을 알린 건 2022년 티몬을 인수하면서다. 국내 최초 오픈마켓인 G마켓을 만들어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시킨 ‘벤처 신화’의 주인공 구영배 대표가 싱가포르로 건너가 세운 회사다. 지분 교환을 통해 사실상 0원에 티몬을 사들인 큐텐은 거침이 없었다. 2년도 채 안 되는 시기에 국경을 넘나들며 위메프를 포함해 한국과 미국 전자상거래 업체 4곳을 더 사들였다.
▷몸집을 불려 큐텐의 물류 자회사를 나스닥에 입성시킨다는 게 구 대표의 구상이었지만, 업계에선 무리수라는 우려가 컸다. 인수한 업체들이 빈껍데기나 마찬가지여서다. 티몬과 위메프는 2010년 창립 이래 한 번도 영업이익을 낸 적이 없고, 심지어 자산보다 부채가 많은 자본잠식 상태였다. 최근엔 당장 현금이 들어오는 상품권을 과도하게 할인해 팔면서 심각한 자금난에 빠진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더해졌다.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됐다. 티몬과 위메프가 이달 들어 판매자들에게 대금 정산을 못 하고 있다. 두 쇼핑몰에 입점한 판매업체는 6만여 곳인데, 정산받지 못한 돈이 최소 1700억 원이 넘을 거라고 한다. 티몬·위메프는 소비자가 결제하면 대금을 자체 보관했다가 최대 두 달 뒤에 판매자에게 지급하는 방식을 써 왔다. 다른 이커머스 업체들이 배송 후 하루 이틀 내 정산해주는 것과 딴판이다. 이커머스의 정산과 대금 보관, 사용 등과 관련해 법 규정이 없는 틈을 노려 두 회사가 결제대금을 자기 돈처럼 ‘돌려막기’식으로 운용해 오다 사달이 난 것이다. 큐텐이 인수 과정에 결제대금을 끌어다 썼다는 얘기도 나온다.
▷두 회사는 결제대금을 자체 보관하지 않고 제3의 금융기관에 맡겼다가 구매 확정 시 곧바로 지급하는 정산 시스템을 다음 달 도입하겠다고 한다. 판매대금을 제때 받지 못해 도산을 걱정하는 영세 판매자들에겐 한가하기 짝이 없는 대책이다. 티몬은 4월 마감이었던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여태 제출하지 않았는데, 아무런 제약 없이 영업해 온 게 의아할 따름이다. 이번 사태는 허술한 법·제도 아래서 폭풍 성장한 이커머스 시장의 거품이 터지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