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PF 사태 대응 실패로 주택 공급 위축 정책자금 수도꼭지 열어 주택 수요는 증가 부채감축 없이 금리인하 등 떠밀리는 한은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짙은 안개 속에 갇혀 있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마침내 시계 내에 들어왔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통화 정책의 시선을 물가에서 경기 연착륙으로 돌려야 한다고 언급한 후 연준 이사 중 매파로 분류되는 크리스토퍼 윌러까지도 금리 인하를 시사하면서 시장에서는 9월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통화 정책에서 걷힌 안개는 미 대선으로 옮겨졌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로 몸 풀 시간도 없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구원 등판하게 된 것이다. 이런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대선 전 금리 인하를 정치 개입이라 비난하면서도 자신이 집권하면 바로 금리 인하를 단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실 트럼프는 2021년부터 본격화된 글로벌 인플레이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작금의 인플레이션은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붕괴, 우크라이나 전쟁이 주요 원인이었다. 하지만 그 밑단에는 트럼프가 시행한 무역규제로 20여 년간 미국 저물가를 견인한 중국 등 신흥국의 저가상품 수입에 따른 인플레이션 역외수출이 중단된 것, 반이민 정책으로 인한 임금 상승이 있다. 그런 트럼프가 이제 통화 정책마저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한국은행 총재는 “차선을 갈아탈 준비를 할 때”라며 금리 인하를 시사하면서도 이번 달 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그러면서 가계부채 증가, 주택 가격 상승 등 금융 불안 변수를 요인으로 지목했다. 한은이 금리 인하를 섣불리 단행하지 못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환율이다. ‘레고 사태’ 이후 고공행진을 해온 환율은 올해 들어 한은의 암묵적 저지선인 1400원을 계속 위협하고 있고, 한은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21년 말 대비 12% 이상 감소한 외환보유액이 그 흔적으로 남아 있다. 연준에 앞서 한은이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를 추진할 경우 1400원 방어선이 무너질 우려가 있다.
고금리로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고, 레고 사태로 몇몇 증권사가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속칭 ‘F4’라 불리는 금융 당국자 모임에서 모든 증권사에 유동성을 공급해 구제해 주는 동시에 신규 PF 대출을 아예 봉쇄해 버렸다. 반면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보금자리론이니, 디딤돌·버팀목 대출이니 해서 주택수요 쪽에서는 정책성 유동성 공급을 계속했다. 주택을 공급하는 쪽의 수도꼭지는 잠그고, 수요 쪽의 수도꼭지는 열어둔 것이다. 이로 인해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면서 수도권 주택 가격은 레고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여기에 민생 대책의 일환으로 소상공인, 한계기업에 이자 및 원금상환 유예나 정책자금 투입이 병행되면서 고금리에 따른 디레버리징(부채 감축)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고금리 정책은 당연히 고통을 수반한다. 썩은 살을 도려내고 새살이 돋게 하는 순기능을 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런데 고금리는 단행해 놓고 뒤로는 가계, 기업에 저금리성 정책자금을 공급했으니 부채 감축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나.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내린다면 주택 가격 급등과 가계 부채 급증은 피할 수가 없다.
첫 번째 문제인 환율은 연준이 금리를 내리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심각한 건 두 번째다. 그렇다고 금리를 현재 상태로 유지할 경우 가뜩이나 힘든 민생경제를 방치하게 된다. 한은 입장에서는 ‘부채의 강’ 앞에서 주저할 수밖에 없게 됐다. 금리 인하를 단행해 부채의 강을 넘자니 주택가격 급등과 이에 따른 가계 부채 급증이 겁난다. 그렇다고 넘지 않으면 민생경제가 더 악화될 수 있는 것이다.
미리 부채 감축에 성공했다면 이런 고민에 처하지 않았을 터다. 이제 부채의 강은 섣불리 넘기에 너무 불어나 버렸다. 이런 와중에 용산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여당까지 나서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부채의 강을 건너라고 등을 떠미는 형국이다. 예상컨대 한은은 연준의 금리 인하 후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다. 과연 한은은 부채의 강을 넘어 생환할 수 있을까.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