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라·정책사회부
지금도 할머니가 머물던 요양병원을 생각하면 약간 시큼한 소독약 냄새가 떠오른다. 10여 년 전 할머니 옆 병상에 누워 계시던 어르신들은 초점 없는 눈빛으로 오가는 사람을 바라보곤 했다. 병원 측은 하루 세 끼 식사 및 목욕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그 외에는 TV 시청 정도가 소일거리의 전부였다.
지금은 크게 달라졌을까. 한국인 대부분은 여전히 집 대신 요양병원 등에서 말년을 지내다 세상을 떠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인 10명 중 7명은 병원에서 사망했는데 이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한국에선 가족의 헌신적 지원이 없으면 몸이 아픈 노인들이 혼자 지내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소수는 거액을 내고 최고급 노인주거복지시설에 입주하고, 다수는 건강보험 지원을 받는 요양병원 등 시설에서 여생을 보낸다.
반면 최근 둘러본 네덜란드에선 노인 대부분이 평생 살던 지역에서 가까운 이들과 함께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 낮에는 케어팜에서 농사를 짓거나 데이케어센터에서 이웃들과 산책하고 저녁엔 익숙한 집에서 잠든다. 중증 치매 등으로 혼자 생활이 불가능하면 지역 시설에 가지만 이곳에서도 집 환경을 최대한 재현한 공간에서 요리하고 빨래를 개며 평생 살던 방식대로 일상을 이어간다.
하지만 한국에선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지방자치단체 등이 저마다의 기준에 충족하면 서비스를 제공하고 아니면 제외한다. 유기적·통합적 케어 서비스가 어렵다 보니 몸이 아프면 의료진이 상주하는 시설로 옮기는 손쉬운 길을 택한다. 네덜란드와 비교하면 노인의 일상을 존중하지 않는 난폭한 방식이다. 네덜란드 현지 데이케어센터, 케어팜, 요양원 등에선 소독약 냄새가 나지 않았고 노인들의 눈에도 생기가 넘쳤다. 기자는 이게 바로 ‘일상의 힘’이라고 느꼈다.
2026년 한국에서도 돌봄통합지원법이 시행된다. 한국에서도 ‘병상’ 대신 ‘일상’ 속에서 원하는 방식대로 삶을 마무리하는 문화가 정착되길 바라 본다. 일상을 이어가다 집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히 세상을 떠나고자 하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