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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갈 곳’과 ‘할 일’이 더 중요해지더라”[서영아의 100세 카페]

입력 | 2024-07-27 01:40:00

[이런 인생 2막]
종합병원 기계기사 나상욱 씨
대기업 명퇴, 폴리텍 통해 자격증
퇴직 후 새로운 루틴 찾아 리셋
색소폰 연습과 농사가 새 소일거리
험한 세상, 퇴직자 투자는 금물




삼성물산의 초대형건설현장을 누비며 재무관리를 담당해온 나상욱 씨는 58세에 희망퇴직한 뒤 종합병원 기계기사로 일하며 제2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재미 있습니다. 이 큰 병원이 내가 일해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보람도 있고요.”

인생 별 건가. 아침마다 갈 곳이 있고 그곳에서 내 역할이 있다는 믿음. 책임이 있지만 그렇다고 숨막힐 정도는 아닌 무게감. 적당히 즐길 거리에 소소하게 만나 작은 일상을 함께 할 이웃과 친구들. 요즈음 나상욱 씨(61)에게 삶은 이러한 것들로 가득차 있다.

35년간 일한 직장을 떠난 뒤 1년간 ‘리셋’을 거쳐 만들어낸 일상이다.


“난 기계감시실 보일러 담당”
평일 오전 8시 전에 서울 은평구의 한 종합병원으로 출근한다. 집에서 걸어서 15분.

지하 7층 기계실에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장비들이 밤새 탈없이 일했는지 점검한다. 냉방기와 보일러같은 거대 장비가 즐비한 이곳은 냉난방과 냉온수가 병원 곳곳에 핏줄처럼 뻗어나가는 심장같은 곳이다.

근무시간 내내 계기압과 가동실적을 점검하고 직접 정비를 하기도 한다. 심각한 고장이라면 기기 공급업체에 연락해 수리를 의뢰한다.

동료는 16명. 그를 포함한 10명이 낮시간 기계설비의 유지관리를 맡는다. 6명은 주야간 3교대로 관제실 제어와 모니터링을 담당한다.

오후 5시 퇴근 뒤엔 다른 일상이 기다린다. 월수금은 음악연습실에서 색소폰을 불고, 화목은 농장에 가서 작물들을 살핀다. 주말이면 격주 토요일마다 3시간씩 있는 오케스트라 연습을 제외하면 농장에서 지내며 친구들과 술 한잔 기울인다.

2022년 9월 시작된 그의 루틴이다. 2021년 9월 삼성물산을 희망퇴직한 뒤 새 루틴을 완성하기까지 딱 1년 걸렸다.


나 씨의 주말농장에서 익어가는 수박. 나상욱 씨 제공

나씨는 잘 익은 수박을 쪼개는 모습을 동영상으로도 보여줬다. 이날 하루 5통을 수확했다고. 나상욱 씨 제공


―지역 내 생활권이 잘 만들어져 있네요.

“집을 기준으로 병원까지 1.2km, 음악연습실은 병원에서 버스로 두 정거장, 주말농장은 집에서 3km 떨어진 곳에 있어요. 농장에 하우스를 두 동 지었는데 한 동은 과일 재배하고 한 동은 제 놀이공간이예요. 냉장고니 테이블, 대형선풍기 등이 갖춰져 있지요. 고향 친구, 군대친구, 그 부인들까지 해서 6명이 자주 모입니다.”

8, 9년 전 퇴직을 염두에 두고 신혼 초에 살던 은평구로 이사했다. 퇴직 직전 주말농장치고는 넓은 250평을 매입해 과일 나무를 심었다. 그로서는 퇴직후를 차곡차곡 준비한 셈이다.


건설현장 재무담당으로 세계 누벼

1986년 삼성종합건설(1995년 삼성물산 건설부문으로 흡수합병)에 입사했다. 35년간 재무 관리와 금융 업무 등 경영 지원에 종사했다.

그의 역량은 삼성이 펼친 해외 초대형 건설사업에서 빛났다. 30대였던 1994년부터 2년 반은 러시아에서, 40대로 넘어가던 2001년부터 5년간은 카타르에서, 50대로 넘어가는 2010년부터 7년간은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건설현장 살림살이를 도맡았다. 러시아에선 군부대, 카타르에서는대형 플랜트, 아랍에미리트에서는 바라카 원자력발전소를 지었다.

“제 역할은 현지에서 공사 인프라를 구축하고 운영하면서 금융관리를 하는 것, 쉽게 말해 재무적 측면 수발이죠. 현장 사무소 만들고 공사 인력과 기자재, 장비를 준비하면서 숙소와 식사 공사 관련 자금을 관리하는 식이죠.”

도합 15년 쯤 해외 근무를 했는데 대부분 ‘기러기’ 생활이었다. 딱 한번 카타르 부임할 때 온가족이 함께 갔는데 당시 중1, 초4 아들들이 너무 심심해했다.

“몇 달만에 다 귀국해 버렸죠. 한국에서 부친 이삿짐이 카타르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 후로는 아이들 학교 문제도 있고 해서 저 혼자 근무했습니다.”

―가족과 너무 오래 떨어져 지낸 것 아닌가요?

“건설회사니까요. 일하는 거잖아요. 지금도 건설사 직원들은 그렇게들 지냅니다. 가족도 중간에 놀러 오기도 하고, 별로 불만 없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었고요.”


아랍에미리트 근무 시절 삼성물산이 지은 부르즈 할리파 빌딩을 배경으로 한컷. 나상욱 씨 제공



인생 후반전, 적당히 일하고 쉬는 균형점은?
58세의 희망퇴직은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7년간의 UAE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2년간 강원도 국책발전소 건설사업 경영지원총괄(CFO)로 파견됐던 그에게 회사는 다시 인도네시아 주재원으로 나갈 것을 제안했다.

“저도 가족도 나이가 있어서 또 해외에 나간다는 게 좀 싫더군요. 제게 주어진 선택지는 인도네시아 가서 60세까지 근무하거나 희망퇴직 하거나, 둘 중 하나였어요.”

회사는 희망퇴직을 택한 그에게 1년 넘는 휴직기간을 줬다. 이 기간 여러 실험을 해볼 수 있었다. 유행따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코로나 확산으로 여의치 않자 지리산 둘레길 270km를 3주에 걸쳐 걸었다. 은퇴후 소일거리로 주말농장을 생각하고 집에서 3~4km 떨어진 경기도 양주 화훼단지에 땅을 산 것도 이때다.

“순례길 걷는 거야 그때뿐이고 이후 삶에 대한 대안이 될 수는 없죠. 그보다는 생활의 틀이 필요했어요.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반드시 집에서 나와야겠다고 작정했는데, 처음엔 매일 오전에 헬스장 가고 오후엔 악기 연습실 가서 시간 보내곤 했지요.”

열심히 일해온 세대라 그런 걸까. 1차 베이비붐 세대의 막차를 탄 나 씨는 퇴직을 생각한 순간, 아무런 계획 없이 하얗게 남겨진 하루 일과가 낯설었다. 휴식을 꿈꿔왔는데 이 불편하고도 불안한 느낌은 뭐지…. 뭐라도 해야 했다.

그 무렵 고용노동부 산하 기능전문대학 폴리텍의 ‘신중년 특화과정’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단순히 용접을 배우려 했다. 주말농장에 움막을 하나 짓고 싶은데 직접 용접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자격증 5개 취득, 처음엔 모두 떨어져 오기로 공부
그는 현재 가스기능사, 에너지관리기능사, 에너지관리산업기사, 공조냉동기계산업기사, 에너지관리기능장 등 자격증 5개를 갖고 있다. 폴리텍에서 공부한 6개월(2022년 3월~8월)이 그의 변신을 도왔다.

폴리텍 정수캠퍼스의 2022학년도 신중년 특화과정 수료식. 나상욱 씨 제공

폴리텍에서 용접에 집중하는 나 씨. 이글거리는 불꽃을 보면 희열이 느껴진다고. 나상욱 씨 제공


먼저 3개의 기능사 자격증에 도전했지만 에너지관리기능사 하나만 붙었다.

“창피했고 오기가 생기더군요. 아침 8시 전에 학교에 가서 밤 11시에 경비아저씨가 불 끄라고 찾아올 때까지 공부했어요. 그렇게 해서 공조냉동기계 기능사는 떨어졌는데 더 어려운 공조냉동기계 산업기사는 붙었습니다. 나머지 자격증은 병원에 취업한 뒤에 땄지요.”

―용접은 잘 배우셨나요.

“제일 재미 있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꽃을 들여다보면 희열이 느껴졌어요. 가스, 전기, 아르곤용접을 다 익혔고 지도교수님과 ‘용접 아트’에 도전해볼까 얘기도 했어요.”

―경험자들은 입을 모아 폴리텍의 실습지원 시스템을 칭찬하던데요.

“특히 지도교수가 열정적으로 대해 주셨어요. 제 길이 막힐 때마다 아이디어를 내주고 길을 열어주신 것도 교수님이죠.”


격주 토요일마다 모이는 은평구 ‘서울 색소폰오케스트라’에서 다른 연주자들과 음을 맞추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나상욱 씨 제공

최근 나씨가 속한 오케스트라와 다른 지역단체들이 협력해 음악회를 겸해 지역사회에서 짜장면 1000그릇을 나누는 행사를 가졌다. 나상욱 씨 제공

얘기를 해나갈수록 그가 다채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것은 또하나의 반전. 고교생 때 시작했던 클라리넷 취미가 몇 년 전부터 색소폰으로 발전했다.

“색소폰은 두바이에 있던 시절 독학으로 익혔어요. 나중에 한국 들어와서 교습도 받고 했지요. 퇴직을 앞두고 은평구의 ‘서울 색소폰 오케스트라’에 가입했어요. 50여 명 규모의 아마추어 관현악단인데 격주로 토요일마다 모여 3시간씩 연습을 합니다.”



“퇴직후에도 정형화된 일과 필요”

―작업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십니까.

“희망퇴직을 결정할 때 앞으로 일은 안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와 보니 정형화된 일과가 있어야 되겠더군요. ‘내가 어떻게 저런 일을 하느냐’는 생각만 버리면 일거리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 병원에서 일할 생각이었나요?

“전혀요. 하다 보니 알게 되는 과정의 연속이었지요. 일단 해보지 않고서는 그 다음을 알 수 없습니다. 제 경우 일단 자격증을 갖게 되니 여기저기 지원할 곳들이 보이더군요. 사실 여기 다니면서 코레일이나 대형카드사 빌딩에도 합격했는데 출퇴근에 시간쓰기 싫어서 그냥 여기 있기로 한 거죠. 급여 차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요.”

―혹시 급여를 여쭤봐도 됩니까.

“250만 원 정도 됩니다. 친구들이 부러워해요. 은퇴하고 이렇게 재취업하는 게 흔하진 않잖아요. 친구들은 대부분 작년, 올해 은퇴했는데 뚜렷하게 하는 일이 없어요.”

―친구분들에게 이런 길을 권하지는 않았나요?

“이 과정이 제가 쉬운 것처럼 얘기를 하지만 처음 접하면 상당히 어렵습니다. 특히 문과출신에게는 용어부터 생소해요.”

그의 말대로 에너지관리기사 시험과목을 검색해보니 연소공학, 열역학 계측방법, 열설비재료 및 관계법규 등 전문과목들이 줄을 잇는다.

그로서는 일하는 이유가 경제적인 데 있지도 않은 듯했다.

“직장 동료들 덕분에 제가 이렇게 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제가 연장자니까 술을 많이 사는 편이예요. 월급보다 술값이 더 나오는 것 같아요, 하하.”

―생활비에 보태지 않아도 되나요?

“당분간은 집사람이 알아서 할 수 있어요. 제 퇴직을 앞두고 아내가 카페를 열 준비를 하는 걸 마지막 순간에 제가 뜯어말렸어요. 그렇게 굳은 저금을 빼서 쓰는 건데, 국민연금 수령할 때까지는 이렇게 쓰기로 했습니다. 집사람은 내년 초부터, 저는 내후년 8월부터 연금이 나옵니다. 퇴직연금도 있고요.”


퇴직자, 자기 돈 넣는 일은 뜯어말리고파
가족이건 친구건 인생 2막의 일거리를 찾을 때 그가 강조하는 원칙이 있다. 자영업이나 사업같이 자기 돈 태우는 일은 절대 피하라는 것.

“경찰 총경으로 퇴직한 제 친구는소방안전관리자, 경비지도사 자격이 있는데 쓸모가 많지 않아요. 경비지도사는 경비 용역업 같은 걸 할 수도 있는데 자기 자본이 들어가야 하니까…. 세상이 워낙 정글이라 퇴직자가 자기 돈 넣고 하는 사업은 절대 하면 안됩니다.”

―경찰 출신이라면 덜 걱정해도 되는 것 아닐까요.

“하이고….더 잘 당해요. 세상 물정 모르고 어깨에 힘만 들어가 있고. 그 친구도 저 따라 근처에 땅사서 주말농장 하고 있는데 낮에 할 게 없어서 스트레스 받더군요.

퇴직 뒤 뭘 할지 미리 준비하는 게 중요한 것같습니다. 이 친구는 ‘내가 경찰 고위직인데 나가서 자리가 없겠느냐’는 막연한 생각만 했을 뿐, 퇴임 당일까지 현직에서 일을 하니 퇴임이란 실감도 못 하고 준비 자체가 안 됐어요. 막상 나온 뒤 벽에 부닥치는 거죠. 직장 다니면서 뭔가를 준비하는 게 잘 안 되더군요.”

병원의 거대장비들을 점검하는 나상욱 씨. 그의 팀이 일하는 곳은 ‘기계감시실’로 멤버 16명 중 나 씨는 실장 다음의 연장자라고 한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얘길 듣다보니 그에겐 더 큰 그림이 있었다.

“이 일은 65세 정도까지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2026년부터 기계설비 유자격자 수요가 많아질 거예요. 기계설비법이 개정돼 일정 면적 이상 공동주택이나 건물은 의무적으로 기계설비 유지 관리자를 선임해야 하거든요. 저도 여기서 4~5년 경력을 쌓으면 관리자 등급이 올라가는데, 그럼 지방에서 공장 관리하면서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럼 오케스트라 활동은요.

“그게 좀 문제인데, 그 지역에도 뭔가 있지 않겠습니까? 요즘 소그룹으로 봉사활동하면서 버스킹하는 분들도 보이던데 길이 있겠지요. 정 안 되면 혼자서 버스킹할 수도 있어요. 제가 장비들을 완벽하게 갖고 있거든요.”


“난 지금도 삼성 사람”
―오랜 세월 한 직장에서 근무하고 퇴직하신 분들에게 회한이 많던데 어떠신지.

“전 지금도 삼성 사람입니다. 삼성이 지은 아파트에 살고 휴대전화는 갤럭시, 옷도 빈폴만 입고…

돌이켜보면 쉽지 않은 일을 걸어왔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곳에 있는 동안 제 존재의 목적은 거기서 살아남는 거였어요. 돈을 만지는 자리잖아요. 삼성의 업무감사는 매우 엄격하고 정례적이어서 일하면서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지요.

간혹 터져나오는 금융권의 각종 횡령 배임 등 보도를 보면 ‘왜 저 정도밖에 관리가 안 됐을까’ 이해가 안 될 정도예요.

이제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고 보니 무사히 잘 마쳤다는 생각도 들고 보람도 느낍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