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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 27일 한일 합의로 세계유산 등재될 듯… 강제노역 반성은 미지수

입력 | 2024-07-26 19:16:00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26일(현지시간) 라오스 비엔티안 내셔널컨벤션센터(NCC)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회의에서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4.7.26/뉴스1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유력한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와 막판 교섭에서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려면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 등 전체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한국 요구를 수용하고 이를 위한 일부 실질적인 조치를 이미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2015년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나가사키현 하시마섬(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때와 비교해 일본 측의 전향적 조치를 이끌어 냈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본이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노역에 대해 얼마나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알릴지는 미지수다. 조선인 노동자에게 가혹했던 상황에 대해 일본이 사죄 의사를 내비칠 가능성도 낮다. 이에 따라 한국 측 요구가 일부 반영됐다고 하더라도 역사 반성에 인색한 일본과 인식 간격을 메우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투표 대결 없이 사도광산 등재될 듯”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일본 사도(佐渡)광산 세계유산 반대 서명 결과를 유네스코에 보냈다고 7일 밝혔다. 일본 니가타현 소재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이 이뤄진 곳이다. 지난 한달간 진행된 이번 온라인 서명 운동에는 국내 누리꾼 및 재외동포, 유학생 등 10만 여명이 동참했으며 서명 결과와 사도광산 관련 서한을 메일로 전달했다. 사진은 일본 사도광산 내 터널. (서경덕 교수 제공) 2022.4.7/뉴스1

외교부 당국자는 26일 기자들과 만나 “가까스로 한일 간 합의가 막판에 이뤄지고 있다”며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한일 간 (등재 찬반) 투표 대결 없이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사도광산은 27일 인도 뉴델리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46차 회의에서 한국을 포함한 21개 회원국 컨센서스(전원 동의)로 등재가 확실시된다.

이 당국자는 일본이 ‘전체 역사’를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이를 위한 실질적 조치를 이미 취했다”고 말했다. 실질적 조치는 조선인 노동자 역사를 알리는 시설물을 현장에 전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일본 정부가 조선인을 포함한 노동자 역사를 사도광산 현지에 전시할 방침을 굳혔고 한국 정부와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사도광산은 16~19세기 세계적 규모 금광이었다. 19세기 후반부터 대규모로 개발됐고 일제강점기엔 1500여 명의 조선인이 끌려가 혹독한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일본 정부는 애초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가 불거질까 봐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2022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한국과의 역사 전쟁을 피해선 안 된다며 세계유산 후보로 추천해 갈등이 점화됐다.

● 여전히 큰 한일 역사 인식 간격

한국 정부는 2015년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당시 일본이 약속을 어긴 전례를 염두에 두고 일본의 사전 조치 이행 확인에 초점을 맞췄다. 9년 전에는 약속만 받아냈지만 이번에는 일본이 이미 조치를 취했다는 점에서 당시보다 한발 나아갔다는 평가다.

일본은 군함도 등재 당시 ‘본인 의사에 반하는 조선인 강제노역’을 공식 인정하며 희생자를 기리는 전시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전시 시설(산업유산정보센터)은 군함도에서 1000km 이상 떨어진 도쿄에 뒀다. 강제노역 사실보다는 조선인을 평등하게 대해줬다는 왜곡된 설명문을 주로 전시했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강제동원을 포함한 전체 역사가 반영되지 않으면 사도광산 등재에 반대하겠다고 맞섰다. 유네스코 자문기구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도 지난달 한국 입장을 반영해 “전체 역사를 현장 레벨에서 포괄적으로 다루는 설명 전시 전략을 책정하라”며 ‘보류(refer)’를 권고했다.

한일 합의로 세계유산 등재가 이뤄지게 되면서 지난해 3월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법 발표 이후 이어져 온 한일 관계 개선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이 사도광산 현장에 전시하는 시설물이 한국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면 정부 간 관계 개선과 별개로 한국 국민들의 반발은 커질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이 과거에 행한 다양한 형태의 강제동원이 국제법상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과거사 사죄 문제에서도 2015년 아베 담화에서 “다음 세대에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며 더 이상 반성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사도(佐渡)광산
일본 혼슈 서쪽 니가타현 사도섬에 있는 광산. 16~19세기 일본 최대 금광이었고 1939~1945년에는 조선인 1500여 명이 강제동원돼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다. 1989년 폐광돼 현재는 관광지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