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방통위원 0명’] 공영방송 주도권 노린 정쟁 계속… 여야, 서로 “장악-강탈 시도” 비난 與,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 방침… 野, 방통위법 개정해 저지 나서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이재명 당 대표 후보를 둘러싼 채 밝게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본회의에서 방송통신위원회 설치·운영법 개정안은 민주당 등 야당 의원 주도로 통과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야당의 법안 강행 처리에 항의하며 본회의장에서 퇴장해 표결에 불참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이상인 방송통신위원회 직무대행 겸 부위원장이 26일 자신의 탄핵안 표결 직전 자진 사퇴하면서 방통위가 초유의 ‘0인 체제’에 직면했다. 대통령실은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를 먼저 임명하고 이 부위원장의 후임을 찾는 순으로 ‘8, 9월 MBC 등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 로드맵을 계획대로 이행하겠다는 기류다. 이에 맞서 더불어민주당은 아직 임명도 되지 않은 이 후보자의 탄핵을 예고했다.
야당의 비정상적 탄핵 추진에 정부여당도 번번이 ‘사퇴-면직 재가’ 카드로 맞대응하면서 14개월 새 직무대행까지 포함한 7번째 수장이 물러나는 등 출구 없는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방통위에선 여야의 힘겨루기가 장기화된 탓에 방송·통신·미디어 정책이 방치되고 각종 관련 정책 현안 대응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 MBC 방문진 선임 둘러싼 여야 극한 전쟁
방통위 상임위원은 방문진 등 공영방송 이사진을 선임하는 권한을 갖는다. 방문진은 다음 달 12일, KBS는 다음 달 31일, EBS는 9월 14일에 각각 기존 이사들의 임기가 끝난다. MBC 사장 인사권을 가진 방문진 이사진 임기 만료를 앞두고 야당은 친야 성향의 이사진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 하고, 여당은 친여 성향 인사로 교체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각자에 유리한 방송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셈법이다. 여당은 야당을 향해 “공영방송 장악 시도”라고 하고 야당은 대통령실·여당을 향해 “공영방송 강탈 시도”라고 하며 극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여권은 방통위 의결 최소 정족수인 ‘2인’을 어떻게든 채워 예정된 일정에 따라 이사 선임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고, 이에 맞서 야당은 탄핵 등을 반복해서라도 이를 저지하려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이 부위원장의 사퇴로 탄핵 추진은 불발됐지만 MBC 사장이 친정부 인사로 바뀔 수 있는 만큼 정부여당의 방문진 이사 교체를 지속적으로 막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 등 야당은 이날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강제 종결시키고 방통위의 의결정족수를 기존 2인에서 4인 이상으로 규정하는 내용의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 속에 개정안은 재석 183명에 183명 찬성으로 가결됐다.
민주당 관계자는 “어떻게 해서든 공영방송 사장 교체를 막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후 임명되더라도 결국 또 탄핵 절차를 밟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 “이진숙-이상인 후임 동시 임명 가능성도”
대통령실은 이 부위원장의 후임 인선 시기 등을 놓고 고심 중이다. 대통령실 내에선 이 후보자 임명 후 부위원장 후임을 인선하는 방안이 우선 검토되고 있다. 한 여권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누굴 임명해도 곧바로 탄핵 절차에 들어갈 것을 고려해 아예 이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끝난 뒤 이 후보자와 이 부위원장 후임을 동시에 임명하고, 당일에 회의를 열어 이사진 선임을 통과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미 방통위가 KBS와 방문진의 이사 지원자 공모, 국민 의견 수렴 절차 등을 마친 만큼 이 후보자 취임 직후 이사 선임안이 의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방통위 내부에선 주요 업무 중단으로 멈춰서면서 각종 정책 현안 대응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방통위의 주요 현안 대부분이 상임위원들의 의결사항이기에 이 후보자 임명이나 이 부위원장 후임 인사 결정이 늦어지면 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공영방송 이사 선임 외에 지상파 재허가도 당면 현안이다. 지난달 12일 KBS, MBC 등 146개 방송국에 대한 재허가 세부 계획을 의결했지만 김홍일 전 위원장이 2일 사퇴하면서 관련 절차가 멈춰선 상태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요금 인상 문제, 이동통신사의 판매장려금 담합 의혹 의견 정리 등도 시급한 사안이지만 발이 묶여 있다. 방통위가 추진 중인 통합미디어법 제정도 진행이 더딘 상태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