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동물원의 동물들도 폭염에 힘들어해 33도 안팎 찜통더위에 냉수마찰도 역부족 방사장보다 에어컨 나오는 내실로 어슬렁 "바람이 안 보여요" 관람객들 아쉬움 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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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2시 청주동물원. 충북 청주의 최고온도는 33.1도, 체감온도는 33.6도까지 치솟았다.
폭염경보는 지난 24일부터 4일째, 폭염특보는 20일부터 8일째다.
청주동물원 유명인사인 수사자 ‘바람이’가 푹푹 찌는 무더위에 숨을 헐떡거린다. 도저히 못 견디겠는지 나무 구조물 아래 그늘에 털썩 드러누워 혀를 내민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바람이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땅바닥에서 일어나 내실로 몸을 피했다. 야외 방사장보다 좁은 공간임에도 에어컨과 선풍기의 시원함을 택했다.
뒤늦게 온 관람객들은 바람이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발을 돌렸다.
방사장 앞에서 만난 이창엽(29)·문은지(31·여)씨 부부는 “날씨가 더워서 바람이가 방 안으로 피서를 갔다고 한다”며 “아쉽지만 다음에 보러 와야겠다”고 했다.
한 일가족은 방사장 앞 벤치에 앉아 바람이를 10여분간 기다렸지만 끝내 모습을 보지 못했다.
바람이 이웃인 미니돼지 ‘태도리’도 나무 그늘 옆 풀숲에 털썩 누워 코를 골며 휴식을 취했다.
무더위에 진이 빠졌는지 바로 앞 1m 거리에 관람객이 다가와도 아무 반응 없이 코만 골았다. 고모 손을 잡고 동물원을 찾은 김시우(6)군은 “돼지가 코를 곤다”며 자는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인근에서 관람객 쉼터 공사를 하던 B씨(60대)는 “우리도 이렇게 더운데 동물들은 얼마나 덥겠냐”며 안쓰러운 눈으로 태도리를 바라봤다.
반달가슴곰들도 무더위와 힘겨운 사투를 벌였다.
보다 못한 전은구 사육사가 내실로 들어가 호스를 잡아 들었다. 물소리를 듣고 잽싸게 몰려온 곰들은 창살에 붙어 시원한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았다.
전 사육사는 “고양잇과 동물인 사자, 호랑이와 다르게 곰은 물에 거부감이 없다”며 “두꺼운 털 때문에 더위를 더 타서인지, 시원한 물로 털을 적셔주면 곰들이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북아프리카 사막지대에서 건너온 사막여우들도 한국의 습한 더위가 힘든지 방사장 내 풀숲 사이로 숨어들었다.
‘빈 우리가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 사육사는 “자세히 보면 곳곳에 누워있는 여우를 볼 수 있다”고 했다. 한참을 뚫어지게 본 뒤에야 풀숲 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사막여우들이 앙증맞은 형체를 드러냈다.
시베리아 호랑이 ‘이호’와 캥거루과 왈라루, 히말라야타르 등 여러 동물도 더위를 피해 그늘에서 낮 시간을 보냈다. 힘차게 뛰어노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20년 만에 동물원을 찾았다는 민소영(29·여)씨는 “날이 더워서 그런지 동물들이 전체적으로 지쳐 보인다”며 “물에서 생활하는 수달만 혼자 신난 것 같다”고 말했다.
나무 그늘 벤치에서 쉬고 있던 김순희(60대·여)씨는 연신 부채질을 하며 “동물 대부분이 방에 들어가 있어 관람을 제대로 못 했다”며 “사람도 동물도 더위에 지치는 날인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사육사들도 더위가 힘든 것은 매한가지다.
사육사들은 무더운 여름엔 1시간 일찍 출근한다. 조금이라도 서늘한 시간에 일하기 위해서다.
사료 준비와 배급, 사육장 청소 등을 하다 보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유일한 이동 수단인 카트는 옆이 뚫려 있어 냉방은 꿈도 못 꾼다.
전 사육사는 “이런 날씨엔 오전 일과를 끝내고 점심 전에 샤워를 한 번 한다”며 “여름 휴가자라도 있는 날에는 땀을 배로 흘린다”고 토로했다.
그는 “한국의 찜통더위에 적응한 동물들도 각자의 방법으로 더위를 나고 있다”며 “관람객의 안쓰러운 마음도 이해되나 동물들이 배앓이할 수 있으니 차가운 음식은 함부로 던져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청주=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