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희 대타' 北대사 내내 '외톨이'…中왕이와 짧은 대화뿐 러 외무에 말 건넨 참가국 대표 없어…韓정부 "극도로 고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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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외교전의 대표 장소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북한의 존재감이 사라졌다.
우호적이던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마저 핵·미사일 도발에 이어 러시아와의 불법적 군사협력 강화에 북한에 등을 돌리고 있어서다.
최선희 외무상의 대타로 ARF에 참석한 리영철 주라오스 북한 대사는 물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국제사회의 냉엄한 시선을 견뎌내야 했다.
그 사이 27개 ARF 참가국 대표 중 리 대사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말을 건넨 사람은 바로 옆자리에 착석한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 단 1명 뿐이었다. 악수하고 대화를 나눈 게 약 3분 정도로 매우 짧았다.
리 대사는 회의장에 입장한 후 주변국과 소통하지 못한 채 내내 소외된 모습을 보였다. 리 대사와 함께 온 주라오스 북한대사관 직원으로부터 책상 위에 놓인 회의 자료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게 전부였다.
라브로프 장관 역시 배정된 자리에 홀로 앉아 있었고,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는 사람은 언론에 포착되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냉담한 태도는 리 대사가 회의장에 도착하기 직전 아세안 회원국 외교장관들이 “최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비롯한 시험 발사 급증에 대해 ‘엄중한 우려’(grave concern)를 표명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공동성명을 속전속결 발표했을 때부터 예고돼 있었다. 아세안 가운데는 북한과 오랜 관계를 맺어온 나라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게다가 리 대사는 명찰을 확인해야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리 대사는 회의장 입장 전 ARF 참가국 대표가 대기하는 공간인 ‘웨이팅 룸(Waiting Room)’에 아예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리 대사를 이 곳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가 개최된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만난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리 대사와 얘기를 나눈 나라가 있었다면 아세안에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유럽과 달리 심리적으로 북한 대사를 남한 대사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아세안은 북한과 상호 대사관을 개설하고 있어 (리 대사와) 대화를 안 할 이유가 없다. 중국 왕 부장과 대화한 것도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북한과의 관계가 편한 나라는 거의 없고 (최근)러시아와 더 가까워지는 측면이 있어 본질적으로는 극도로 고립된 상황”이라면서 “국제행사에서 누구와 대화하고 어울리느냐와는 별개”라고 덧붙여 전했다.
북한은 지난 2000년 ARF에 가입한 뒤 남북미 관계 흐름에 따라 회의에 참석과 불참을 반복하면서 자국 입장을 국제사회에 설파하는 무대로 삼았다. 남측으로서도 북한의 면전에서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는 흔치않은 기회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2019년부터 고립 노선이 뚜렷해지고 코로나19 국경 봉쇄까지 겹치면서 북한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그동안 노골적으로 북한을 옹호하던 중국조차 한국과의 전략적 소통·교류를 늘려가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조 장관은 전날 라오스 비엔티안의 한 호텔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ARF를 포함한 다양한 양·다자 협의 계기에 아세안을 비롯한 다수 회의 참석국들이 우리와 인식을 같이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아세안은 특정국가를 지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례적으로 일부 국가는 북한을 규탄하고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비엔티안=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