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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다면 ‘클린 겨드랑이’[2030세상/박찬용]

입력 | 2024-07-28 22:54:00



매년 여름 물을 뿌리며 노는 음악 축제 ‘워터밤’이 화제다. 선정성이나 과도한 물 사용 등의 논란은 여기서 할 이야기가 아니고, 올해 유독 눈에 띄던 경향이 있었다. 워터밤을 찾은 남자 아이돌 가수가 많아졌다. 이들은 모두 상반신을 탈의하고 무대에 서서 고대 그리스 조각처럼 아름다운 몸을 자랑했다. 그 사이에 모두 확연한 공통점이 보였다. 겨드랑이털이 없었다.

박찬용 칼럼니스트

‘클겨’, 클린 겨드랑이, 즉 털 없는 겨드랑이다. 이 용어는 아이돌 팬계에서 이미 익숙하게 쓰인다. 남자 아이돌 가수 사이에서 겨드랑이털 제모는 옵션이 아닌 필수 수준이다. 이들의 무대 의상 중에는 민소매가 많다. 안무 동작 중 팔을 들어 올릴 때도 많다. 겨드랑이가 보이는 상황은 필연적으로 생긴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그때를 위해 겨드랑이털을 밀고 나온다. 앨범 재킷이나 화보 사진에서도 이들의 겨드랑이는 원래 털이 없던 사람처럼 매끈하다.

운동선수 역시 종목에 따라 겨드랑이가 보인다. 민소매 유니폼을 입는 농구가 대표적이다. KBL에서 운영하는 유튜브에도 2022년 영상 ‘클겨 논쟁’이 있다. 댓글 창에는 ‘클겨를 원한다’는 팬들의 의견이 대다수다. 티끌만 한 저항도 아쉬운 수영을 제외하면 겨드랑이와 경기력의 상관관계는 크지 않을 것이다. 다만 프로스포츠 선수들은 경기력만큼 팬들의 사랑과 관심도 중요하니 신경이 쓰일 것이다. 영상에 출연한 농구선수 이대성도 자신은 ‘클겨파’라고 했다.

연예인과 유명인들의 행동거지는 보통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떨까. 나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88년생, 89년생, 91년생, 92년생, 차례로 물어봐도 모두 밀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연락할 수 있는 지인 중 가장 어린 99년생에게 묻자 답이 달라졌다. “제 사진 보고 물어보셨어요?” 그는 올해 처음으로 겨드랑이털을 정리해 보았으나 군 복무 중에도 겨드랑이털을 관리하는 전우들을 봤다고 했다. 거기는 남자들밖에 없는데도.

남성의 ‘클겨’ 확산의 배경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 가설이 있다. 요즘 한국 사회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흉물로 여긴다는 점이다. 클겨뿐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돌은 눈썹 아래 털이 없고 모두 아기 피부처럼 깨끗하다. 털은 2차 성징의 직접적 상징물이다. 그런 요소들은 아이돌 이미지 트리트먼트 과정에서 모두 사라지고 영상 속의 아이돌이나 미남들은 모두 삶은 달걀(태닝하면 맥반석 달걀)처럼 매끈매끈하다. 최근 소소하게 화제인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야쿠쇼 고지의 콧수염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연간 남성 화장품 소비액이 가장 많은 나라다. 시장 규모는 2013년부터 1조 원을 넘었고, 제품 구성 역시 기초부터 헤어에 색조로 세분화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외모에 신경 쓰는 남자 기준은 ‘BB크림 바르는 남자’였는데 지금 젊은 남자의 외모 관리가 겨드랑이로까지 확장된 셈이다. 내가 본 한국 남자들은 생각 이상으로 외모에 예민한데, 젊은 남자처럼 보이고 싶다면 겨드랑이털을 밀어 보면 어떨까. 마음이 젊어 보일 건 확실하다. 겨드랑이털에 대한 의견으로 남자끼리의 세대차를 가늠할 날이 머지않았다.

박찬용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