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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전 뒤이은 꿈밭극장에서 열린 ‘아시테지 축제’

입력 | 2024-07-29 14:46:00


2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아르코꿈밭극장에서 열린 ‘시포나드, 애벌레의 꿈’은 알을 깨고 나온 애벌레가 번데기에서 나비로 성장하는 것처럼 어른이 되고자 쉬지 않고 성장하는 어린이의 모습을 그린다. 아시테지 코리아 제공.

무대 위 무용수가 커다란 알 속으로 쏙 들어가자 객석에서 앳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아이들은 유리구슬 같은 목소리로 “우와, 신기하다” 감탄하고, 엄마의 귀에 대고 “사라졌어. 어디로 간 거야?” 소곤소곤 질문했다. 2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아르코꿈밭극장에서 열린 어린이 무용극 ‘시포나드, 애벌레의 꿈’에서다. 옛 ‘학전’ 소극장이었던 이곳은 올해 2월 가족뮤지컬 ‘고추장 떡볶이’ 공연 이후 약 5개월 만에 아이들의 웃음꽃으로 가득 찼다.

가수 고 김민기가 운영하다 폐관한 옛 ‘학전’의 자리에서 ‘제32회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가 개최됐다.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는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아시테지 코리아)가 주최하는 국내 대표적인 어린이·청소년 공연예술 축제다. 28일까지 아르코꿈밭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 등 대학로 일대 극장에서 8개국 공연 11편을 선보였고 다음 달엔 광주광역시, 경기 광주 등지에서 지역 연계 공연을 이어간다.

옛 학전 소극장의 2층 사무실은 어린이 관객을 위한 ‘예술놀이터’로 재단장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색칠놀이를 하고 동화책을 읽으며 공연을 기다렸다. 아시테지 코리아 제공.

고인은 세상을 떴지만 “아이들을 위한 양질의 공연이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새 공간에서 이어졌다. 기존 극단 사무실을 임시로 재단장한 2층 ‘예술놀이터’는 공연 시작 전, 관객 20여 명으로 붐볐다. 아이들은 색연필을 들고 색칠 놀이에 푹 빠져들었고, 부모는 “이게 무슨 동물이야?” 묻거나 책장에 꽂힌 동화책을 꺼내 읽어줬다. 5살 아들과 극장을 찾은 최모 씨(36)는 “5분 기다리는 것도 힘들어하는 아이와 함께 놀면서 기다릴 라운지가 있어 좋다”며 “20대부터 대학로 소극장 공연을 즐겨 봤다. ‘학전’이 어린이 극장으로 다시 문을 열어 기쁘다”고 했다.

공연이 곧 시작된다는 안내멘트가 나오자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지하 소극장으로 향했다. 개·보수를 마친 소극장엔 더 이상 쿰쿰한 곰팡내가 나지 않았다. 기존 누수로 인해 조명 사이사이 받쳐뒀던 수많은 양동이도 전부 사라지고 없었다. 어린 관객을 위한 키 높이 방석도 객석 뒤편에 새로 구비됐다. 암전 직전, 어린이·청소년 전용 극장에 걸맞은 공지가 흘러나왔다. “어른 관객 여러분, 주위를 둘러봐주세요. 무대가 잘 보이지 않는 아이는 없나요? 어린이들이 공연을 잘 볼 수 있도록 협조 부탁드려요.”

이날 공연된 ‘시포나드, 애벌레의 꿈’은 알을 깨고 나오는 애벌레처럼,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춤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무용수가 공중으로 흩뿌린 물이 조명 빛에 반사될 땐 아이와 어른 모두의 감탄사가 터졌다. 공연 후 마련된 ‘관객과의 대화’에선 한 어린이 관객이 손을 번쩍 들고 출연진에게 “무대 위에 있을 때 기분이 어때요?” 묻기도 했다. 6살 딸과 공연을 관람한 안모 씨(38)는 “지난주 김민기 씨에 대해 검색하다가 축제 소식을 접했다. 어른이 봐도 재밌는 공연을 아이와 볼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했다.

27일 아르코꿈밭극장 앞마당의 김광석 노래비 옆에 고 김민기를 기리는 국화꽃다발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한편 21일 향년 73세로 별세한 고인은 학전의 뒤를 이은 아르코꿈밭극장이 청소년과 신진 뮤지션을 위한 장이 되길 바란다는 뜻을 남겼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그 뜻을 이어받아 이달 17일부터 어린이·청소년 전용 극장으로 운영 중이다. 29일 유가족은 “삼일장 내내 ‘우리 아빠 참 잘 살았네’라는 생각이 들어 눈물과 웃음이 함께 나오는 시간이었다”며 감사를 전했다. 이어 “고인은 자신의 작업이 시대의 기록 정도로 남길 바랐다. 그렇기에 고인의 이름을 빌린 추모공연, 추모사업은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