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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대학로 문화의 상징 ‘학전’ 세운 김민기

입력 | 2024-07-29 22:45:00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뒤편에 있는 ‘학전’ 소극장은 올해 3월 김민기 대표(1951∼2024·사진)의 건강 악화와 만성적 재정난으로 문을 닫기 전까지 대학로를 상징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이달 21일 세상을 떠난 김 대표는 이 소극장을 33년 동안 이끌어온 인물입니다.

전북 익산 출신인 김 대표는 아버지가 6·25전쟁 중 돌아가시는 바람에 산파였던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화가를 꿈꾸며 서울대 회화과에 들어갔지만 입학 후에는 포크송 듀오 ‘도비두’를 결성해 음악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듬해 대표곡 ‘아침이슬’을 발표했고, 솔로 1집을 내놓으면서 싱어송라이터로 두각을 드러냅니다.

1970, 80년대 그가 만든 노래들은 군부 독재에 저항하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우리의 아픈 현대사를 고스란히 담아낸 ‘아침이슬’이나 ‘친구’ ‘상록수’ ‘작은 연못’ 같은 그의 노래들은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는 이들의 마음을 울리며 퍼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김 대표는 조사를 받고 여러 곡이 금지곡으로 지정되는 등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가 1991년 대학로에 문을 연 학전은 곧 대학로 문화의 상징이 됐습니다. 가수 김광석, 그룹 들국화, 강산에 등이 이곳에서 라이브 공연을 했습니다. 1994년에는 독일 작품 ‘지하철 1호선’을 한국 현실에 맞춰 각색해 록 뮤지컬로 무대에 올렸습니다. 이 연극은 초연 이후 무려 18년 동안 4000회 이상 공연됐고, 70만 명 이상이 봤습니다. 이 공으로 김 대표는 윤이상, 백남준에 이어 2007년 한국인으로서는 세 번째로 독일 문화원이 주는 괴테 메달을 받았습니다.

이후에도 뮤지컬 ‘모스키토’ ‘의형제’ ‘개똥이’ 같은 학전만의 특색을 가진 여러 공연을 만들어 올렸고, 소극장 뮤지컬로는 처음으로 라이브 밴드를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크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이곳에서 한국적인 창작 뮤지컬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를 써나갔습니다.

최근 학전은 어린이 전용극장으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학전 개관 33주년을 기념해 김 대표가 마지막으로 연출했던 작품은 어린이극인 ‘고추장 떡볶이’였습니다. 그걸 보면 학전은 사라진 게 아니라 그의 정신을 기려 다시 태어난 거라고 생각됩니다.



이의진 도선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