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제호(醍醐)’는 불경과 힌두교 경전에 나오는 유제품으로, ‘고된 과정을 오랫동안 거쳐 얻는 신성하고 존귀한 최고급의 물건 또는 경지’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한의서인 ‘본초강목’에는 “불경에 따르면 젖으로 락(酪)을 만들고, 락(酪)으로 수(酥)를 만들고, 수(酥)로 제호를 만든다”고 쓰여 있다. 지금으로 따지면 버터와 비슷한 것으로 짐작된다.
숙종 44년 ‘승정원일기’의 기록에도 제호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형태나 맛이 참기름과 비슷한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이에 따르면 숙종은 눈병을 치료하기 위해 제호를 먹었는데, 쉽게 투과하는 성질을 이용해 백회혈(百會穴)에 제호를 바르는 방법도 활용했다고 한다. 제호는 이외에도 기침 등의 호흡기 질환 및 피부 가려움증을 치료하는 약물로 활용됐다.
매실은 구연산 함유량이 많아 예로부터 식중독 예방과 찬 음식을 먹고 난 배탈에 쓰인 약재였다. 구연산은 실제 해독과 강한 살균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방에선 오매를 가슴이 답답하며 화가 올라오는 증상을 안정시켜 심장을 보호하는 데 쓰였는데 그 효과가 좋다. 실제 ‘동의보감’에는 “오매를 차로 마시면 심장을 안정시켜 잠을 잘 오게 한다”는 기록이 있다.
오매와 함께 ‘제호탕’에 들어간 약재인 ‘백단향’ 또한 배탈 치료에 주로 쓰였다. 백단향은 박달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단향나무과의 식물로, 위장의 활동을 좋게 하며 찬 음료나 한기가 맺혀 명치가 아픈 곽란, 토사, 복통 증상을 치료한다. 그 외에 ‘사인’이란 약재는 생강과 식물로 맵고 따뜻해 위장을 데워주며 여름철 떨어진 입맛을 되찾는 데 효험이 있다. 초과 또한 생강과의 따뜻한 식물인데, 헛배 증상과 냉기를 없애고 과일이나 술을 많이 먹고 생긴 복통을 치료하는 데 주로 썼다.
처방에 들어간 4가지 약재의 약효로 보면 영조가 먹은 ‘제호탕’은 찬 과일이나 음료를 많이 먹고 생긴 설사병이나 입맛 떨어짐 등 여름 위장병을 치료하는 데 쓰인 약식(藥食)임을 알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겉바속촉’의 음식이 아니라 겉은 차갑고 속은 따뜻하게 해주는 ‘겉차속따’의 진정한 군자의 여름 음료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