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의안과 앞 ‘산더미 법안’ 29일 국회 본청 7층 의안과 앞 복도에 법안 관련 서류들이 쌓여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 개원 61일째인 이날까지 오후 6시 기준 법안 등 의안 2376개가 발의됐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여야 의원들이 22대 국회 개원 후 두 달 동안 2353개 의안을 발의했다. 탄핵안, 증인출석 요구안 등을 제외하면 일반 법안은 2289개에 이른다. 의원 300명이 1주에 1개꼴로 발의한 셈이다. 15명의 상임위라면 의원당 매주 법안 15개를 읽고 검토하고 토론해야 한다. 법안과 자료를 다 읽어볼 수나 있을까. 국회의원들의 과도한 날림 발의가 22대 국회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뜻이다.
의원들은 일하는 국회의 단면으로 설명하지만 실적 부풀리기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에 가깝다. 몇몇 시민단체의 발의 건수 순위 발표도 영향을 줬겠지만, 더 큰 이유는 총선 공천 심사나 당 사무처의 당무 감사 대비용이다. 의원들은 왕성한 국회 활동의 근거로 법안 발의 숫자를 내밀곤 한다.
국회에서 방치되다 폐기된 법안을 가져다가 조문 한두 곳을 수정해 발의하는 경우도 있다. 2개월 동안 제출한 법안 2289개 가운데 그런 일이 없었을까. 내용도 제대로 모른 채 동료 의원들이 대표발의한 법안에 공동발의자로 이름만 올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건수 늘리기에 집착한 결과, 이해당사자에게 미칠 파장을 고려 못 한 채 덜컥 냈다가 거둬들인 법안이 21대 국회만 226건에 이른다.
자정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의원 스스로가 발의를 신중하게 하도록 ‘사전입법영향평가서’를 함께 제출하도록 하려는 시도는 “입법권 침해”라는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영국 독일 프랑스가 시행하는 걸 우리라고 못 할 이유는 없다.
지금대로라면 22대 국회는 최다 발의-최다 폐기의 길로 향하고 있다. 21대 국회 때는 2만5858개가 발의됐다가 1만6784개가 폐기되면서 법안처리율이 35%에 머물렀다. 16대(70%), 18대(55%), 20대(36%) 국회를 거치며 처리율은 빠르게 낮아졌다. 이런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선 정치권이 발의 건수라는 외형을 따지는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의원들끼리 서로 다 알면서도 언제까지 “건수가 상위 10%이니 A등급 정치인”이라는 코미디를 고집하겠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