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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발 쏘며 뽑힌 내가 해야지” 무명부담 날린 10점 맏언니

입력 | 2024-07-30 03:00:00

[PARiS 2024]
양궁 女단체 10연패, 활짝 웃은 전훈영… 나이 서른에 메이저대회 첫 출전
‘경험 부족’ 따가운 시선 견디며 훈련… “이젠 편한 마음으로 개인전 나설 것”



손가락과 메달로 ‘10’… 한국 女양궁만 가능한 세리머니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 전훈영 임시현 남수현(왼쪽부터)이 29일 파리 올림픽 양궁 단체전 결승전에서 중국을 꺾고 올림픽 10연패를 달성한 뒤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기념사진을 함께 남기고 있다. 오른손 검지를 세우고 그 옆에 왼손으로 금메달을 받쳐 10연패를 의미하는 숫자 ‘10’을 만들었다. 파리=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전훈영(30) 임시현(21) 남수현(19)으로 구성된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은 29일 파리 앵발리드 경기장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 결승에서 슛오프 끝에 중국을 5-4로 물리치고 올림픽 10연패를 달성했다.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 ‘맏언니’ 전훈영의 눈에선 계속 눈물이 흘렀다. 기쁨의 눈물이라기보다는 후련함의 눈물이었다. 전훈영은 경기 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막 났다. 그동안 힘들었던 게 생각이 나서…”라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전훈영은 올림픽을 준비하는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는 후배들을 이끌어야 할 대표팀 맏언니였다. 하지만 자신도 파리 올림픽은 처음 출전하는 메이저대회였다. 세 선수 모두 올림픽 무대에 서 본 경험이 없다는 게 이번 대표팀의 큰 약점으로 지적됐다. 파리 올림픽에는 여자 단체전 10연패도 걸려 있어 부담은 더 컸다.

가장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했던 건 전훈영이었다. 그는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너무 힘들었다. 10연패 달성이라는 게 너무 부담됐고, 개인적으로도 메이저대회 첫 출전이다 보니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그는 또 “나라도 걱정됐을 것 같다. 나는 팬들이 전혀 모르던 선수였다. 그래도 ‘공정한 과정을 거쳐 내가 선발돼 버렸는데 어떡하나? 그냥 내가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훈련 과정을 버텼다”고 했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법”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동안 올림픽 출전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14년 세계대학선수권대회 2관왕 출신인 그는 2020년 열린 도쿄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을 당당히 통과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도쿄 올림픽이 1년 연기되는 바람에 국가대표 선발전을 다시 치러야 했고, 결과는 탈락이었다. 이후 3년간 절치부심한 그는 파리 올림픽 선발전에서 최종 2위를 했다. 30대가 된 뒤에야 마침내 ‘바늘구멍’을 뚫었다. 공정한 과정을 거쳐 태극마크를 달았다는 사실 자체가 그에겐 엄청난 힘이 됐다. 세 차례의 선발전과 두 차례의 평가전을 거치면서 쐈던 약 2500발의 화살 하나하나가 그를 버티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선 올림픽 무대였지만 초반엔 잠시 흔들렸다. 대만과의 8강전에 대표팀 1번 사수로 나선 그는 8개의 화살 중 8점 이하를 쏜 게 5개나 됐다. 4번째 화살은 7점이었다. 그의 부진을 후배 임시현과 남수현이 대신 잘 메워줬다.

네덜란드와의 4강전부터는 영점이 잡히기 시작했다. 8개의 화살 중 4개를 10점에 꽂았다. 특히 세트스코어 2-4로 뒤진 4세트 첫 발에 10점을 쏘며 분위기를 바꿔놨다. 한국은 슛오프 끝에 결승에 진출했다. 전훈영은 중국과의 결승전에서도 4세트까지 10점을 다섯 번 기록했고 슛오프 첫 발에서도 10점을 쏘며 올림픽 10연패의 주역이 됐다. 전훈영은 “단체전 10연패를 가장 큰 목표로 생각하고 파리에 왔다. 이제 그 목표를 이뤘기에 개인전에서는 좀 더 편한 마음으로 경기에 나설 것 같다”고 말했다.



파리=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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