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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선수와 악수 거부했던 우크라 검객, 조국에 첫 메달 안겼다

입력 | 2024-07-30 14:56:00


29일(현지 시간) 2024 파리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 최세빈 선수(전남도청)를 누르고 메달을 따낸 우크라이나 올하 하를란이 얼굴을 감싸쥐고 오열하고 있다. 파리=AP 뉴시스


승리가 결정된 순간, 그는 머리를 감싸 쥐며 경기장에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쏟아지는 눈물을 닦는 손에는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노랑, 파랑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었다.

올림픽에 출전한 그 어느 선수보다 절박한 마음으로 조국을 가슴에 품은 그는 역전 끝에 값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2024 파리올림픽에서 처음 딴 메달이다. 선수는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이것은 우크라이나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입니다.”

29일(현지 시간) 2024 파리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동메달 결정전에서 득점한 뒤 포효하는 우크라이나의 올하 하를란 선수. 파리=AP 뉴시스


우크라이나 펜싱 간판인 올하 하를란이 29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펜싱 여자 사브르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 최세빈(전남도청)을 꺾고 메달을 손에 넣었다. 6점 차이로 밀리다가 막판에 연달아 득점하며 역전극을 보여줬다. 개인 통산 다섯 번째 올림픽 메달이다.

하를란은 경기 뒤 인터뷰에서 “이 메달은 나의 조국과 조국을 수호하는 사람들, 그리고 러시아 때문에 목숨을 잃어 이 자리에 올 수 없었던 우크라이나 선수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하를란의 부모님은 러시아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남부 해안 도시 미콜라이브에 산다. 하를란의 가족들은 러시아의 공습을 피해 수개월을 집 지하실에서 살아야 했다고 한다.

지난해 7월 펜싱 세계권선수대회에서 경기에 이긴 뒤 러시아 안나 스미르노바(오른쪽)와 악수를 거부하는 우크라이나 올하 하를란(왼쪽). 유튜브 캡처


하를란은 지난해 7월 펜싱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러시아 선수와 악수를 거부해 실격 처리되면서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당시 하를란은 여자 사브르 64강전에서 러시아 선수 안나 스미르노바를 만나 15대 7로 승리했다. 그는 경기가 끝난 뒤 악수하러 다가오는 스미르노바를 검으로 막아 세웠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악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저항의 표시였다.

펜싱 경기 규칙에 따르면 승패가 결정된 뒤 선수들이 악수를 해야 경기가 끝난다. 스미르노바는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행위라며 50분 동안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항의했다. 끝까지 악수를 거부한 하를란은 결국 실격 처리됐다.

하를란은 경기 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누구에게도 평화를 강요할 수 없다. 특히 (러시아에게 침공당한) 우크라이나인에게는 더더욱 평화도, 악수도 강요할 수 없다”며 “우크라이나에게 영광을”이라는 영상 메시지를 남겼다.

이 실격으로 하를란이 파리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할 위기에 처하자,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특별 초청장’을 보내 파리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게 됐다.

29일(현지 시간) 2024 파리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 최세빈(전남도청)을 누르고 메달을 따낸 우크라이나 올하 하를란. 파리=AP 뉴시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