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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었을 때, 밤하늘을 지나던 것들[소소칼럼]

입력 | 2024-07-30 16:00:00


바깥은 한여름인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서늘했다. 가을쯤 이곳은 이미 겨울이라 옷을 단단히 입어야 한다고. 한참을 가로등 하나 없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려 도착한 곳이었다.(아, 달리지는 못했지.) 차 바퀴 아래 거친 돌들이 느껴지며 차체가 울퉁불퉁 튀었다. ‘이거 맞아?’ 불안해질 쯤 산꼭대기에 다다랐다. 강원도 화천의 천문대.

“기가 막히게 구름 몰려올 때 오셨네요.”
어릴 적 ‘과학동아’ 같은 어린이 잡지에서 본 커다란 망원경 앞에 섰다. 내 차례가 되자 직원이 입맛을 다셨다. 여름철은 구름 속도가 빨라 별 보기에 좋은 계절은 아니라고 했다. 주춤하는 사이 “지금 얼른 보세요!”


기상관측소 위 희끄무레하게 흘러내리는 은하수. 별 보기 좋은 계절은 아니지만, 역설적이게도 별들의 강을 보기 좋은 때는 여름이란다.


망원경 안에 우주가 있었다. 고개를 떼고 맨눈으로 볼 땐 그냥 작고 노란 점인데 렌즈 안에선 목성의 고리가 또렷하게 보였다. “렌즈 안에 행성 스티커를 붙여놓은 건 아니겠지?” 옆에서 남편이 하는 말에 유치하다고 눈을 흘겼지만 사실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할만큼 신기했다.

맨눈으로 본 하늘에도 별이 가득했다. 목성, 토성, 견우 직녀, 백조, 큰곰, 작은곰… 서울에선 크고 밝은 별들만 보여 별자리를 찾기 쉬웠는데, 별이 너무 많으니 오히려 더 어려웠다. 목성이 그랬듯 저 많은 점들도 알고 보면 제각각의 생김새와 삶이 있겠지.

칠흑에 흩뿌려진 별들을 보고 있자니 아득해졌다. 공간감이 사라지고 하늘 한복판에 나만 있는 듯한 순간. 그런데 그 순간 내가 가장 작아진다. 저 별에선 지구도 점으로 보일까, 나는 먼지 한 톨도 못되겠지. 억겁을 지나온 빛들 앞에서 바래기 너무 쉬운 것들을 붙들고 사는 게 어쩐지 조금 우스워진다고 해야 하나. 세상사 아등바등 잊고 나를 내려놓는 게 휴가의 목표라면, 그에 충실한 휴가 일정이었다고 생각했다.


집앞에서 본 밤하늘. 백조자리는 여름철 대표적인 별자리다. 그 사이에 견우와 직녀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서울에서 별을 볼 수 있다고?”
친구의 말이 믿기지 않아 거듭 되물었던 게 4년 전 이맘때다. 인천 영종도에서 별 생각 없이 찍은 밤하늘 사진을 보고 친구가 별자리를 말해준 것이 계기였다. 그저 날이 맑고 별이 많아 찍은 사진이었는데 까막눈에게 눈앞의 글자가 무슨 뜻인지 읽어준 셈이었다.

그녀가 알려준 건 하나 더 있었다. 꼭 멀리 나가지 않더라도 집 앞에서도 별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빛 공해가 심한 도시에서는 별을 보기 어렵다’ 서울은 당연히 별은 못 보는 것으로 지레짐작했는데, 아니었다. 내가 유심히 본 적이 없었을 뿐. 그때부터 종종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게 됐다.

나같은 천체에 문외한도 현대 기술을 빌리면 어렵지 않다. 친구가 추천해준 별자리 찾기 어플을 켜고 이리저리 스마트폰을 돌리다 보면 비교적 단순한 별자리들이 끼워맞춰진다. 어어, 그 때의 나지막한 탄성.

별을 보는 게 왜 생각보다 재미있을까 하니 딱 김춘수의 <꽃>이다. 그동안은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도 관심이 없었다. 설령 본다 해도 무엇이 무엇인지 구분되지 않는 익명에서 의미를 찾긴 어려웠다. 그런데 예전부터 늘 그 자리에 있었을 것들에 이름을 찾아 부르니 완전히 새로워졌다.

우주에서 보면 구분되지 않는 한 공간일텐데 언제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볼 수 있는 별들도 달라진다. 누군가와 함께 쌓는 기억은 덤이다. 2년 전 신혼여행지에서는 남편과 이전에 본 적 없던 남쪽물고기자리를 찾았고, 지난해 춘천에서는 나같은 ‘초짜’ 친구와 함께 북두칠성과 목성을 봤었지 같은.


지난해 가을, 강원도 춘천에서 친구들과 함께 봤던 북두칠성(카시오페이아)



다시 화천에서 돌아오는 길. 다른 때 같았으면 오늘이 어땠네 떠들면서 왔을 텐데 그 하늘에 어떤 말을 덧붙이기 어려웠다. 조용히 들었던 존 메이어의 〈You’re gonna live forever in me〉를 덧붙여본다. 이 여름밤도 수억 광년을 가로지르지는 못하겠지만, 수십년 후 꺼내볼 기억은 되줄 것 같다.


A great big bang and dinosaurs 거대한 빅뱅과 공룡들
Fiery raining meteors 불에 타 쏟아지는 유성들
It all ends unfortunately 안타깝게도 모든 것들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죠
But you‘re gonna live forever in me 그렇지만 당신은 영원히 내 안에 존재할꺼예요
I guarantee just wait and see 확신해요, 끝없는 시간이 지나도 당신은 내 안에 존재할 거예요.


마침 올 여름 장마도 오늘 끝난다고 한다. 구름이 걷히면 별 보기 더 좋은 계절이겠다.




[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