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한여름인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서늘했다. 가을쯤 이곳은 이미 겨울이라 옷을 단단히 입어야 한다고. 한참을 가로등 하나 없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려 도착한 곳이었다.(아, 달리지는 못했지.) 차 바퀴 아래 거친 돌들이 느껴지며 차체가 울퉁불퉁 튀었다. ‘이거 맞아?’ 불안해질 쯤 산꼭대기에 다다랐다. 강원도 화천의 천문대.
“기가 막히게 구름 몰려올 때 오셨네요.”
어릴 적 ‘과학동아’ 같은 어린이 잡지에서 본 커다란 망원경 앞에 섰다. 내 차례가 되자 직원이 입맛을 다셨다. 여름철은 구름 속도가 빨라 별 보기에 좋은 계절은 아니라고 했다. 주춤하는 사이 “지금 얼른 보세요!”
기상관측소 위 희끄무레하게 흘러내리는 은하수. 별 보기 좋은 계절은 아니지만, 역설적이게도 별들의 강을 보기 좋은 때는 여름이란다.
망원경 안에 우주가 있었다. 고개를 떼고 맨눈으로 볼 땐 그냥 작고 노란 점인데 렌즈 안에선 목성의 고리가 또렷하게 보였다. “렌즈 안에 행성 스티커를 붙여놓은 건 아니겠지?” 옆에서 남편이 하는 말에 유치하다고 눈을 흘겼지만 사실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할만큼 신기했다.
칠흑에 흩뿌려진 별들을 보고 있자니 아득해졌다. 공간감이 사라지고 하늘 한복판에 나만 있는 듯한 순간. 그런데 그 순간 내가 가장 작아진다. 저 별에선 지구도 점으로 보일까, 나는 먼지 한 톨도 못되겠지. 억겁을 지나온 빛들 앞에서 바래기 너무 쉬운 것들을 붙들고 사는 게 어쩐지 조금 우스워진다고 해야 하나. 세상사 아등바등 잊고 나를 내려놓는 게 휴가의 목표라면, 그에 충실한 휴가 일정이었다고 생각했다.
집앞에서 본 밤하늘. 백조자리는 여름철 대표적인 별자리다. 그 사이에 견우와 직녀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서울에서 별을 볼 수 있다고?”
친구의 말이 믿기지 않아 거듭 되물었던 게 4년 전 이맘때다. 인천 영종도에서 별 생각 없이 찍은 밤하늘 사진을 보고 친구가 별자리를 말해준 것이 계기였다. 그저 날이 맑고 별이 많아 찍은 사진이었는데 까막눈에게 눈앞의 글자가 무슨 뜻인지 읽어준 셈이었다.
그녀가 알려준 건 하나 더 있었다. 꼭 멀리 나가지 않더라도 집 앞에서도 별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빛 공해가 심한 도시에서는 별을 보기 어렵다’ 서울은 당연히 별은 못 보는 것으로 지레짐작했는데, 아니었다. 내가 유심히 본 적이 없었을 뿐. 그때부터 종종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게 됐다.
별을 보는 게 왜 생각보다 재미있을까 하니 딱 김춘수의 <꽃>이다. 그동안은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도 관심이 없었다. 설령 본다 해도 무엇이 무엇인지 구분되지 않는 익명에서 의미를 찾긴 어려웠다. 그런데 예전부터 늘 그 자리에 있었을 것들에 이름을 찾아 부르니 완전히 새로워졌다.
우주에서 보면 구분되지 않는 한 공간일텐데 언제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볼 수 있는 별들도 달라진다. 누군가와 함께 쌓는 기억은 덤이다. 2년 전 신혼여행지에서는 남편과 이전에 본 적 없던 남쪽물고기자리를 찾았고, 지난해 춘천에서는 나같은 ‘초짜’ 친구와 함께 북두칠성과 목성을 봤었지 같은.
지난해 가을, 강원도 춘천에서 친구들과 함께 봤던 북두칠성(카시오페이아)
다시 화천에서 돌아오는 길. 다른 때 같았으면 오늘이 어땠네 떠들면서 왔을 텐데 그 하늘에 어떤 말을 덧붙이기 어려웠다. 조용히 들었던 존 메이어의 〈You’re gonna live forever in me〉를 덧붙여본다. 이 여름밤도 수억 광년을 가로지르지는 못하겠지만, 수십년 후 꺼내볼 기억은 되줄 것 같다.
A great big bang and dinosaurs 거대한 빅뱅과 공룡들
Fiery raining meteors 불에 타 쏟아지는 유성들
It all ends unfortunately 안타깝게도 모든 것들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죠
But you‘re gonna live forever in me 그렇지만 당신은 영원히 내 안에 존재할꺼예요
I guarantee just wait and see 확신해요, 끝없는 시간이 지나도 당신은 내 안에 존재할 거예요.
마침 올 여름 장마도 오늘 끝난다고 한다. 구름이 걷히면 별 보기 더 좋은 계절이겠다.
[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