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성 건양대 교수
우리는 최초, 최대, 최고라는 형용사에 높은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다. 인삼도 마찬가지다. 최초 재배지, 최대 산지가 어디인가를 두고 은근한 신경전을 벌인다. 하지만 한국 인삼은 산삼부터 재배 인삼까지 최고의 약초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는 점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부국강병이 어느 때보다 절실했던 1902년 ‘황성신문’은 인삼 산업의 민영화를 통해 수출량을 늘리고 인삼 재배지의 동반 성장을 이루자고 주장했다. 당시 해외에서 각광 받는 인삼이 전국에서 재배되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 어조는 훗날 을사늑약 직후 ‘이날을 목 놓아 우노라’라는 이 신문 논설처럼 절절했다.
12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K컬처’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분야의 산업적 잠재성이 강하게 실현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그러나 인삼 산업은 그렇지 못하다. ‘음식과 약은 뿌리가 같다’는 뜻인 식약동원(食藥同源)은 머릿속에만 있을 뿐이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비타민은 매일 챙겨 먹어도 끼니를 거르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렇다면 한국 인삼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목표를 어디에 둬야 할까.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중 건강과 웰빙(참살이)에 둬야 한다.
목표 달성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인삼의 문화적 스토리텔링에서 찾을 수 있다. 19세기 중반 아편으로 내우외환을 겪고 있던 중국에 ‘조선 홍삼이 아편 해독에 특효가 있다’는 인식이 퍼졌다. 이는 당시 중국의 거의 모든 약방 문 앞에 황금색 ‘고려인삼’ 네 글자를 써 붙이게 했다. 소싸움장에서는 고려인삼을 먹은 소에게 돈을 걸라는 허풍성 광고가 관람객 이목을 붙잡았다고 한다. 이에 질세라 미국 상인들은 ‘신랑이 첫날밤을 치른 뒤에는 미국산 인삼을 마셔야 한다’는 이야기를 소설에 넣어 유행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고려인삼의 품질과 스토리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한국 인삼이 갖고 있는 문화적 상징성을 어떻게 구체화해 알릴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인삼공사 몫도 아니고 인삼협회 일도 아니며 지방자치단체 영역은 더욱 아니다. 정부가 나서 국가 브랜드 메이킹 차원의 정책 지원을 해 줘야 가능한 일이다.
정부와 민간이 협심하는 인삼산업융합정책 협의체 운영을 제안한다. 이 협의체는 전국 12개 인삼재배조합과 지역 산업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국제적 연대를 강화해 ‘인삼 문화’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 이를 통해 2028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인삼이 단순한 약재가 아니라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라는 인식을 넓혀야 할 것이다. 또한 지구적 감염병 예방에 주효한 인삼 신제품 개발을 구상하는 담대한 계획도 짜야 한다.
이철성 건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