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독립운동가 후손’ 허미미 “애국가 다 외웠는데… 4년뒤 꼭 부를것”

입력 | 2024-07-31 03:00:00

[2024 파리 올림픽]
유도 여자 57kg급서 아쉬운 은메달
日서 태어나 ‘유도 천재’로 주목… 할머니 유언 따라 日대신 태극마크
“시상식 태극기 보고 행복 느껴”



파리 올림픽 유도 여자 57kg급 은메달리스트 허미미(왼쪽)가 30일 프랑스 파리 아레나 샹 드 마르스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금메달리스트 크리스타 데구치(캐나다), 공동 동메달리스트 후나쿠보 하루카(일본), 사라 레오니 시지크(프랑스)와 함께 기념 ‘셀카’ 촬영을 하고 있다. 파리=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애국가 가사도 거의 다 외웠는데 아쉽다. 다음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따서 꼭 애국가를 부르겠다.”

한국 유도 대표 허미미(22)는 30일 파리 올림픽 여자 57kg급 은메달을 따낸 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들어선 후 담담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한국 국적의 아버지와 일본 국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허미미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모두 일본에서 다녔기 때문에 애국가를 배울 일이 없었다. 그러다 이번 올림픽 금메달을 꼭 따서 시상식 때 애국가를 울리겠다며 틈틈이 가사를 외웠다.

이 체급 세계랭킹 3위인 허미미는 이날 프랑스 파리 아레나 샹 드 마르스에서 크리스타 데구치(29·캐나다)와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이번이 개인 첫 올림픽 출전인 허미미는 정규 경기 4분에 골든스코어(연장전)까지 총 6분 35초간 이 체급 세계랭킹 1위 데구치와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경기 3번째 지도를 받아 반칙패로 데구치에게 금메달을 내줘야 했다.

허미미의 은메달은 한국 유도가 파리 올림픽에서 따낸 첫 메달이었다. 한국 여자 유도 선수가 올림픽 은메달을 딴 것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당시 정보경(48kg급) 이후 8년 만이었다. 한국 여자 유도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조민선(66kg급) 이후로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허미미는 “아직 멀었다고 느끼기 때문에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4년 뒤) 다음 올림픽 때는 나이도 더 먹고 하니까 잠재력을 키워서 꼭 금메달을 따겠다”며 웃었다. 이어 “제일 높은 곳은 아니었지만 시상식에서 태극기가 올라가는 걸 보고 행복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유도 선수 출신인 아버지를 따라 6세 때 유도를 시작한 허미미는 2017년 일본 전국중학교유도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유도 종주국 일본에서도 ‘유도 천재’로 주목받던 선수였다. 그랬던 그가 일장기 대신 태극마크를 선택한 건 할머니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2021년 세상을 떠나기 전 “미미가 꼭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고 유언을 남겼다.

할머니의 유언을 따르기로 한 허미미는 한국 실업팀 경북체육회에 입단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1857∼1920)의 5대손임도 알게 됐다. 2022년 한국 성인 대표팀에 처음 합류한 허미미는 지난해 자신의 생일(12월 19일)을 앞두고 일본 국적도 버렸다.

개인 첫 올림픽을 마친 허미미가 가장 먼저 떠올린 얼굴도 할머니였다. 허미미는 “할머니가 계셨다면 ‘잘했다, 고생했다’고 말씀해 주셨을 것 같다.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다음에는 꼭 금메달을 따겠다”고 했다.

일본 사이타마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허미미는 한국에는 주거지가 따로 없어 대표팀 일정이 있을 때는 진천선수촌이나 호텔을 오가며 생활했다. 일본에는 잘 없는 새벽 체력 훈련 때문에 매일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야 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일본 와세다대 스포츠과학부 4학년인 허미미는 이렇게 숨가쁜 일정 속에서도 틈날 때마다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학업도 병행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가장 먼저 할 일도 이미 정해졌다. 허미미는 “파리까지 같이 와준 훈련 파트너 선수들에게 정말 고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파스타를 사주러 가야겠다”며 웃었다.



파리=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