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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장 공백 4곳중 1곳… 미래사업-내부 인사 모두 ‘스톱’

입력 | 2024-08-01 03:00:00

임기 끝난 원장이 1년째 ‘대타’… 일부선 후임 거론 인사에 ‘줄타기’
기관장 공백 6개월 이상 23곳… 권한 적고 책임 큰 곳은 구인난
“내부 분위기 엉망… 새 선장 시급”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A 기관은 임기가 만료된 기관장이 벌써 수개월째 조직을 이끌고 있다. 후임 기관장 선출 작업이 늦어지는 사이 기존 기관장의 ‘레임덕(Lame Duck·임기 말 권력 누수)’이 본격화되면서 내부 분위기는 엉망이 됐다. A 기관이 추진하는 중요 사업부터 내부 인사까지 여러 의사 결정이 모두 지연되고 있는 탓이다.

A 기관 관계자는 “승진을 앞둔 임직원들이 후임 기관장으로 거론되는 이들에게 ‘줄타기’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며 “새로운 선장이 빨리 임명돼 내부 분위기를 다잡아야 조직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토로했다.

공공기관 4곳 중 1곳은 기관장이 공석이거나 임기가 만료된 기관장이 자리를 유지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연말까지 기관장 임기가 만료되는 곳을 더하면 전체 공공기관의 40%는 기관장 교체가 예정된 상태다. 기관장 공백이 길어지는 일부 공공기관의 경우 신사업 동력이 떨어지거나 조직 내부 혼란이 커지는 모습까지 나타나고 있다.

● 공공기관 81곳서 기관장 공백

31일 동아일보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를 전수 분석한 결과 이날 기준 339개 공공기관(부설기관 12곳 포함)의 23.9%는 기관장 임기가 이미 끝난 것으로 조사됐다. 37곳은 기관장이 ‘공석’인 상태였고 임기가 만료된 기관장이 경영을 이어 가고 있는 곳도 44곳이었다. 하반기(7∼12월) 기관장 임기 종료 예정인 기관(52곳)을 포함하면 기관장 교체를 앞둔 공공기관은 전체의 39.2%에 달한다.

기관장 공백이 6개월 이상 이어진 기관도 23곳이나 됐다. 한국통계정보원 최정수 원장은 지난해 5월 임기 만료 후에도 후임이 선출되지 않아 1년 넘게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강원랜드 역시 지난해 12월 이삼걸 전 대표가 퇴임한 이후 지금껏 후임 사장 공모를 위한 임원추천위원회조차 구성되지 않았다.

김주찬 광운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관장 공백이 길어지면 조직의 수장이 책임지고 추진할 미래 사업이나 장기 투자 등의 결정이 미뤄진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일부 공공기관의 경우 기관장 직을 맡길 만한 인물을 찾지 못해 애를 먹기도 한다. 기관장의 권한은 적은데 업무 부담이나 책임은 과중한 곳이다. 정부 부처 고위 공무원들이 기관장 직을 역임해 오던 한 공공기관은 기관장 임기가 올해 초 만료된 이후 후임 기관장 선출에 실패했다.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이 마땅치 않고 민원인과의 갈등은 지나치게 많다는 이유로 후보자들이 기관장 직을 고사한 탓이다.

● 업무 차질에 커지는 직원 혼란… “대통령·공공기관장 임기 맞춰야”

4월 총선이 끝나고 최근에는 공공기관 경영평가까지 마무리되면서 후임 기관장 공모를 시작한 곳이 등장하고는 있다. 산업부 산하 5개 발전사를 포함해 한국공항공사, 한국부동산원 등도 기관장 선임 공고를 낸 상황이다.

문제는 경영 공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관장 후보 접수부터 검증, 주주총회 등을 거치다 보면 통상 3∼4개월이 소요된다. 지금 기관장 공모를 시작하더라도 10월에 예정된 국정감사까지 수장 공백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공공기관의 기관장 공백은 정권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지적됐던 문제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혹은 알박기 논란이 불거지거나 공공기관 운영 방침의 급격한 변화로 혼란이 발생하는 일이 흔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대통령과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대통령 임기(5년)와 공공기관장 임기(주로 3년)의 격차로 정권 교체기마다 겪게 되는 소모적인 갈등을 없애자는 취지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관련 법안이 수차례 발의됐지만 국회 통과가 무산됐다. 이번 22대 국회에서도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이 기관장 임기를 2년으로 하고 연임 기간을 1년으로 제한해 대통령 임기인 5년과 일치시키자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최현선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권의 국정 과제 혹은 방향에 맞는 공공기관장을 선임하고 임기 사이클도 그에 맞추는 유연한 정책이 필요하다”며 “이런 문제가 빨리 개선되지 않는 한 기관장 선임과 관련된 갈등과 혼란은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세종=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세종=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